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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발전과
일자리·일거리의 미래

최 연 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 『4차 산업혁명과 인간의 미래』 저자

4차 산업혁명의 진원지 다보스 포럼은 2016년 <직업의 미래> 보고서를 통해 “2020년까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71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롭게 만들어질 일자리는 200만 개”라고 예측해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발달로 기계화, 자동화가 가속화되면 일자리가 점점 인공지능과 기계로 대체될지 모른다. 일자리가 줄어들면 대량실업 문제가 발생하고 사회적으로 대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괜스레 미래가 암울해진다.

정말 과학기술 발전과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걸까. 많은 전문가와 미래학자가 컴퓨터화,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예측하고 있지만 과학기술 발전이 반드시 일자리를 감소시킬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기술 발전은 고용시장에 영향을 미치지만 한두 가지 요인에 의해 고용시장이 좌지우지되지는 않는다. 한국고용정보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고용변동의 요인은 여러 가지다. 인구 구조 및 노동인구 변화, 산업특성 및 산업구조 변화, 과학 기술 발전, 기후변화와 에너지 부족,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 변화, 대내외 경제상황 변화, 기업의 경영전략 변화, 정부정책 및 법제도 변화 등 8가지를 들고 있다. 과학기술 발전은 이런 8가지 요인 중 한 가지일 뿐이다. 설사 과학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정부정책, 경제상황 변화 등 다른 요인에 의해 일자리가 늘어나서 상쇄될 수 있다.

일자리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다. 일자리 정책, 일자리 창출, 일자리 수석, 일자리위원회 등에서 보여지듯 오늘날 일자리는 국가적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계속 우리가 일자리만 이야기하는 게 맞는 걸까. 꼭 자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자리가 없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일거리’라고 부른다. 요컨대 일자리와 일거리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보통 일자리와 일거리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다르다. 일자리 (job)는 직장이고, 일거리(work)는 일감이다. 한자어 직업(職業)에서 직은 일자리를, 업은 일거리를 뜻한다. 일거리가 생긴다고 저절로 일자리가 생기는 건 아니며, 일자리를 만든다고 꼭 일거리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일거리를 늘리는 것과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다르다. 직과 업 중 본질적인 것은 업이다.

고용시장의 최근 변화 트렌드 중 ‘긱 이코노미’라는 것이 있다. 긱 이코노미는 1920년대 초 미국의 재즈공연장에서 즉석 연주자를 섭외해 공연을 한 긱(Gig)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경제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다. 사회전반적으로 디지털화가 되면서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유경제가 차츰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고용시장에서도 소규모 수요와 공급이 연결되는 마이크로 글로벌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프리랜스 근로자는 필요에 따라 기업과 계약을 맺고 독립적으로 일하는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긱 이코노미(Gig Economy)’다. 긱 이코노미는 직보다는 업 위주이다. 가령 직은 없고 업만 있는 근로가 늘어나서 긱 이코노미가 일반화되면 안정적인 일자리보다는 전문성에 기반 한 독립적 일거리를 중심으로 고용시장이 재편 될 수 있다. 세계미래학회의 미래예측보고서에 의하면 미래에는 연봉, 월급 등 개념이 사라지고 업무상 보상체계만 남게 되며 일은 임시직 근로자(workers)와 작업지시자(workee) 사이 협상으로 정해지고 보상은 가변적일 수 있다고 한다. 고정적이고 안정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앞으로의 추세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일거리마저 줄어드는 건 아니다. 비숙련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원하지만,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숙련노동자, 소위 창조계급은 오히려 한 곳에 매이지 않고 여러 가지 일거리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고수익 올리기를 원한다.

첨단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이끄는 것이 바람직하다. 항상 사람이 먼저고 창의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우선이다. 첨단기술도 결국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옥탑방에서 읽었다는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의 책에 보면 창의적인 도시의 3요소로 3T를 언급한다. 기술 (Technology), 관용(Tolerance) 그리고 인재(Talent)다. 창조적인 도시를 보면 예외 없이 하이테크 기술이 모이고 창의인재들이 몰려들고 또한 다름을 인정하며 공존하려는 톨레랑스의 문화가 있다. 첨단 기술과 다양성의 문화를 바탕으로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창의인재다. 플로리다는 이들을 창조계급(Creative class) 이라 명명했다. 그는 산업화시대의 주역이 부르주아 계급이었다면 21세기의 주역은 창조계급이 될 거라고 주장했다. 플로리다는 창조계급의 핵심으로 컴퓨터와 수학 관련 직업, 건축과 공학 관련 직업, 생명과학, 물리, 사회과학 관련 직업, 교육·훈련 관련 직업, 미술·디자인·연예·오락·스포츠·미디어 관련 직업 등을 꼽았다. 미래변화를 주도하는 창조계급에 속하는 직업은 미래학자들이 기계화, 자동화에도 불구하고 유망한 직업군으로 꼽는 직업과 대부분 일치한다.2) 이런 창의적인 직업군에서는 일자리보다는 일거리가 더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창조계급은 긱 이코노미와 잘 어울린다. 일거리가 없는데도 인위적으로 일자리만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문직종이나 창의적인 업무의 경우는 일자리보다는 일감을 만들어 고용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공간 개념도 이젠 점점 퇴색하고 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공부할 수 있고, 회사에 가지 않고도 재택근무가 가능하며, 원격진료와 화상회의도 가능하다. 5G, IoT, 통신기술 등이 발전하면 일자리는 줄어 들 수 있다. 하지만 일자리라는 공간에 가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는 일감이나 일거리는 늘어날 수 있다. 매일 출 퇴근하고 자리를 지키면서 일하는 일자리는 산업화 시대의 개념이다. 시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일자리 대신 일거리만 있어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일자리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리가 없는 일거리’ 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