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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를 예측하는
과학기술 출연연

최 연 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수원장, 「4차 산업혁명과 인간의 미래」 저자

잘 알고 지내는 공무원이 들려준 이야기다. 평소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이 많았는데, 유럽 출장 중 인공지능 분야의 한 연구자를 만났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전공을 물었더니 법학이라고 해서 깜빡 놀랐다는 것이다. 법학 자가 무슨 인공지능 연구냐고 물었더니 인공지능이 발전돼 상용화가 되면 인공지능에게 법인격을 부여해야 할지 등의 이슈가 발생할 수 있어 반드시 필요한 연구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유럽의회에서는 인공지능의 학습능력과 자율성에 주목하면서 인공지능에게 전자인간이라는 법적 성격을 부여할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현대 과학 기술 발전으로 인한 변화는 이제 기술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첨단테크놀로지는 산업과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 문화까지도 변화시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 중 최첨단은 아마도 인공지능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 변화 예측 언급으로 언론이 자주 인용하는 전문가 중 제리 카플란(Jerry Kaplan)이라는 교수가 있다. 그는 인공지능 전문가이지만 스탠퍼드대학교 법정보학센터의 교수이며, 컴퓨터공학과 인공지능이 가져올 사회적 영향 및 윤리 등을 가르치고 있다. 자신의 저서 「인공지능의 미래(한스미디어, 2017년)」에서는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의 상생과 공존을 위한 통찰과 제안을 다루었다. 인공지능과 같이 독립적으로 추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출현하면 윤리문제 같은 이슈들이 본격적으로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인공지능 시스템에게도 독자적 권리와 책임이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사람의 소유물에 불과한가, 자율주행차에 행인이 치어 사망하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줄을 서서 기다릴 때 로봇이 주인 대신 줄을 서도 괜찮은가, 인간의 마음을 데이터화해서 기계로 옮길 수 있다면 그 기계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등 지금 으로서는 생소한 이슈들이 끊임없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일자리 문제 역시 인공지능이 초래할 미래변화에서 중요한 이슈다. 미래학자나 전문가들은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이 발전하면 현재 일자리의 상당부분은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될 것으로 보고 있다. 로봇이 인간 일자리를 대거 대체 하게 되면 로봇에게 세금을 매겨 그 재원으로 실직자를 재교육하거나 로봇 대체가 어려운 보건,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유럽에서는 로봇세를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법 진지 하게 논의되고 있다. 인공지능 개발자들은 인공지능 윤리나 대량실업, 로봇세 등의 이슈를 고려하면서 연구개발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기술발전은 언제나 예기치 않았던 수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해 왔다. 인공지능 로봇과의 공존과 과학기술의 윤리적, 법적, 사회적 영향 등도 미래에 중요해질 이슈다.

인류문명은 과학기술과 함께 발전해왔고 과학기술은 인간 자신도 변화시켜왔다. 피터 노왁은 자신의 저서 「휴먼 3.0(새로운 현재, 2015년)」에서 인류의 변화를 기술발전 관점에서 세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최초의 인류는 휴먼 1.0으로 생명활동과 환경에 종속되었고 원시적인 기술을 갖고 있었다. 제2의 인류, 휴먼 2.0은 더 나은 삶을 추구 해온 인간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기술을 개발해 왔다. 이제 첨단기술시대 제3의 인류, 휴먼 3.0은 과학기술을 이용해 생명활동과 환경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시스템을 결정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네덜란드 과학자 파울 크뤼첸은 지금은 지질시대 중 홀로세(Holocene Epoch)가 아니라 인류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인류세 (Anthropocene Epoch)라고 주장했다. 과학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변화는 비가역적인 변화다. 한번 파괴된 환경 생태계는 복구되지 않으며, 산업화의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해서 봉건시대로 되돌아 갈 수는 없는 법이다. 미래 인간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인공지능, 로봇과 공존, 공생해야 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인간 자신의 미래에 대한 근본 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과학기술 출연연구소에게도 발상의 전환과 혁신이 필요하다. 왜 과학기술 출연연들이 연구개발에만 매진해야 하는가. 물론 출연연은 연구개발을 하는 곳이지만 과학기술 발전이 가져올 사회문화 변화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하고 예측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기술의 미래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발전에 따른 사회의 미래이고, 결국은 인간의 미래다. 만약 출연연마다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한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연구본부를 신설한다면 국가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을 잘 모르는 미래학 연구기관의 미래사회 예측보다는 과학기술 연구개발을 하는 출연 연구기관의 미래사회 예측이 훨씬 신뢰도가 높을 것이다. 출연연이 과학자, 연구자뿐만 아니라 변호사, 윤리학자, 인문학자, 경제학자도 고용해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지적재산권과 법제도 연구하고 인공지능발전이 가져올 윤리적 이슈도 고민하고 로봇세와 기본소득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연구하기를 기대한다면 이는 지나친 기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