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기술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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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 제20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취임하신지 1달이 조금 지났습니다. 

    19대 부회장으로 활동하시면서 느꼈던 소감, 그리고 새로운 수장으로서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합니다.



우선 과총의 회장직을 맡게 되어 큰 영광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도 느낍니다. 19대 부회장으로서 3년, 차기 회장으로서 1년의 시간을 보내며 많은 분들의 조언을 수렴하고 자양분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과총은 비영리 기관이면서도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이 부여된 상징적인 곳입니다. 내부적으로 국내 과학기술계 600여 개 회원단체가 소속되어 있고, 이중 학술단체 회원만 해도 40만 명에 이릅니다. 이렇게 큰 조직의 역량을 어떻게 결집하고 끌어낼 것인가, 또 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과총의 일차적인 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핵심에는 ‘소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총이 세대, 분야, 지역, 국가 그리고 산업 간 교류와 융합이 발생하는, 열린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과학기술인과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외부적으로는 취임과 맞물려 겪게 된 COVID-19 사태를 통해 다가올 미래 사회에 과학기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과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인지, 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체감했습니다. 즉 ‘포스트 코로나’시대에 대비한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가 주목할 만큼 COVID-19를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이 과학기술에 있다는 희망을 국민에게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아직까지 일반 대중은 물론 과학기술인 사이에서도 과총의 역할과 기능이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국내외 수많은 과학기술 단체들의 연합회라는, 조금은 특수한 성격의 조직인 만큼 과총의 현황과 성과등을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과총의 설립 목적은 과학기술단체 육성·지원, 과학기술인의 사회 참여 확대, 역할 강화, 권익 신장 도모,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이해 촉진 및 과학기술정책 연구·기획·조사·자문 등을 통해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이에 과총은 500만 과학기술인을 대표하고 대변하며,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과 국제 경쟁력을 견인하기 위해 다방면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원천기술 확보의 기반인 학술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고 공공·민간단체와의 네트워크 구축,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지역 연합회 육성·지원, 해외 고급 한인 과학기술 인력과의 교류·지원 등은 과총이 지속적으로 힘을 쏟고 있는 사업입니다. 


또한 시대가 변화하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 참여와 소통, 국민 생활 문제 해결 등의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과학기술계 현안 이슈를 발굴하고 대응하며, 과학기술계와 정부, 국민 간 소통의 가교로서 정책 자문과 연구 사업을 수행하고 민간의 정책 참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7년부터는 다섯 개 과학기술계 기관이 연합하여 출범한 국민생활과학자문단의 사무처 역할을 하며 국민 생활 문제의 과학적 검증과 대국민 소통을 본격적으로 시도했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10대 과학기술뉴스 1, 2위로 선정된 이슈였던 미세먼지와 플라스틱 문제를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며 과학적 해법 마련에 힘을 실었습니다. 20대 과총 역시 과학기술의 ‘국민 삶의 질 이슈’에 대한 역할이 더 확장될 것이라 내다보고 정책연구소 기능을 강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새로운 수장으로 선출되신 후에, 과총을 ‘과학기술계와 사회 전반은 물론 세대, 지역, 학문 등 모든 영역을 잇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히셨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들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구체적으로 네 가지의 비전을 구상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과학기술 혁신 생태계의 활성화입니다. 학문 간, 분야 간, 세대 간 흩어진 혁신 주체들의 소통과 협력을 촉진하려면 과총을 소통, 융합, 혁신이 살아 숨 쉬는 집단 지성의 플랫폼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 각 분야가 참여하는 정례적 소통협의회를 출범시켜 과학기술생태계 현안과 중장기 국가 정책방향을 공동으로 논의해 나가고자 합니다. 아울러 과총의 600여 회원단체의 참여를 강화하는 상향적 방식의 사업을 적극 도입할 계획입니다.


두 번째는 미래세대의 참여 강화입니다. 원로의 경륜, 시니어의 리더십과 어우러진 청년세대의 도전정신이 과총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젊은 인재의 창의적 도전을 응원하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젊은 과총으로 과감하게 변화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문턱을 낮추고 청년세대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콘텐츠를 가능한 한 많이 도입하고자 합니다.


세 번째는 삶의 질 향상 기여입니다. 김명자 전임 회장님께서도 이 점을 강조하시면서 미세먼지와 플라스틱 이슈를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 국민적 공감대를 마련하고 과학기술의 사회적 역할을 실현하셨지요. 최근 전 세계적인 COVID-19 확산으로 신종 감염병 문제가 인류 난제로 떠올랐고 기후, 환경 등의 분야에서도 과학 기술적 해법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제 과학기술의 역할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보다 확장됐음을 여실히 체감합니다. 과총은 ‘사이언스 오블리주’의 소명과 사회적 책무를 실천할 수 있도록 진력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과총의 새 도약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사이언스 플라자 건립에도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이곳을 시민 누구나 과학문화를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과학문화 공간이자, 다양한 전문가와 일반 시민이 함께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열린 마당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젊은 과학기술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젊은 인재들을 대거 집행부에 영입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총을 젊은 리더십이 이끄는 단체로 탈바꿈하기 위한 다른 방안들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청년들이 찾아오고 싶은 과총이 되려면, 과총이 이들에게 매력과 흥미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젊은 연구자들이 토론회의 청중으로만 참석하거나 과총 차원의 기획에 일부 참여하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러한 탑다운 방식으로는 젊은 연구자들의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이에 젊은 과학기술인들이 직접 사업이나 이벤트를 설계하고 중심이 돼서 활동하는 바텀업 방식의 새로운 마당을 만들려고 합니다. 미래 세대가 직접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40대 중심의 ‘미래세대위원회’가 그 중심이 되고, 이를 통해 젊은 과학기술인의 의견에 귀 기울일 것입니다.


좀 더 확장된 비전으로는 사이언스 플라자에 창업, AI 교육, 스튜디오등의 공간을 마련해 청년층의 수요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그들 스스로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입니다.



    과총은 과학기술 기반 혁신 생태계의 활성화와 함께 국민 생활과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들의 적극적인 해결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KIST 역시 ‘국가·사회적 난제의 해결’과 ‘미래 성장동력의 확보’를 출연(연) 단위에서의 역할과 의무(R&R)로 정한 바 있습니다. 

    대표적인 정부출연연구기관인 KIST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과학기술은 인류의 삶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 사회 재난 등 각종 국민 생활 문제와 과학 기술이 연결되면서 과거보다 소통 영역이 훨씬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계의 사회 참여에 포커스를 맞춘 KIST의 R&R 설정은 매우 반갑고 고무적입니다.


KIST는 국민과 교감할 수 있는 연구로의 접점을 잘 찾아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KIST의 3D 몽타주 기술은 유전자 알고리즘, 자동 인상 변환 기술, 나이 변환 기술을 활용해 장기 미제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민간과의 유연한 협력을 통해 KIST 등 6개 기관이 KT와 AI·빅데이터로 COVID-19의 확산을 예측하는 얼라이언스를 구축해 선제적 모델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KIST 연구자분들께서 앞으로도 출연(연)이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연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주시길 기대합니다. 기술의 사용처만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민간보다 출연(연)이 더 잘할 수 있는 연구에 집중하여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의 요람이 되어 주기를 부탁합니다.



    올해에는 연초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변화될 우리 사회의 모습과, 그 과정에서의 과학기술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사회는 COVID-19라는 문명사적 변곡점을 마주했습니다. 이제는 이 난관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과학기술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마침 과총은 지난 3월 26일 ‘코로나19 이후의 변화’ 온라인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 참여한 과학기술계, 사회, 경제 전문가들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모습을 예측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ICT, 데이터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입니다. 온라인 원격 수업, 화상회의 등을 위한 인프라는 이미 잘 갖춰져 있었지만, 보편적으로 도입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막상 대면 수업이 불가능해지자, 원격수업과 같은 교육 도구의 활용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온라인을 통한 교육 방식에 대해 교수와 학생, 그리고 시민 사회의 우려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시행 후에는 긍정적인 평가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COVID-19은 예상치 못하게 교육 분야에서의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미 미디어 분야에서는 전달 수단이 다양화되면서, 기존의 매스미디어가 아닌 소셜미디어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앞으로 교육 분야에서도 학생 개개인별 맞춤형 서비스가 도입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원격 수업 및 화상회의 등 이른바 비대면 채널은 공간, 건물 확대, 전기 사용 같은 부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경제적 장점도 있습니다.


또한 스마트 팩토리로의 급속한 전환과 재택 근무를 위한 관련 플랫폼 개발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벤처기업들이 출현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도 있습니다. COVID-19 이후 제조업은 침체되겠지만 스마트 팩토리로의 전환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의학적으로는 감염병 백신이 아주 빠른 시간 내에 개발되기는 어렵다는 현실적인 측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COVID-19 이후 비대면 의료처치와 관련된 R&D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한 번에 대량으로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백신 개발은 전 세계 과학자의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 15일 KIST도 가톨릭대 등 4개 연구 기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코로나 백신 개발을 앞당길 수 있는 훌륭한 연구 성과를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1). 이처럼 국내외 공동연구 체제는 치료제, 백신 개발에 있어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과학기술계가 글로벌 난제에 슬기롭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협력이 중요해지리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계의 팩트체커(fact-checker)로서의 역할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최근 가짜뉴스와 ‘딥페이크’ 범죄 등은 더욱 대담하고,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대규모 감염병 확산과 같은 사회적 재난에 있어, 비과학적이고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정보들은 사회적 혼란을 더욱 가중 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과학기술계가 사회적 책임을 갖고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나서야 합니다.


1) 면역증강제와 세포 안에 효과적으로 침투할 수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결합시켜 빠르게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


    과총에서는 COVID-19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 포럼 개최, 캠페인, 포털 정보 제공 등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감염병이나 자연재해 등 국가, 사회적으로 해결이 요구되는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이언스 오블리주’를 다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셨는데, 과총이 현재 COVID-19 문제 해결을 위해 수행하고 있는 활동들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여쭤봅니다.



‘사이언스 오블리주’는 참여와 실천이 핵심입니다. 과총이 기존에 하고 있던 일을 더욱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롭게 요구되는 일을 선제적으로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OVID-19와 관련하여 정제된 과학기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온라인 시리즈 포럼을 매주 개최하고 있으며, 전문가 의견 수렴과 국민을 위한 팩트체크 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청중 없는 온라인 포럼에 500여 명이 참여하고, 실시간 소통이 이뤄지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를 계속 확장해 나갈 계획입니다.


COVID-19로 인해 대부분의 과학기술계 학술활동이 취소 또는 연기되고 있습니다. 과총은 학술 활동 위축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학회 대상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 제공에 나섰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범과학기술계가 뜻을 모았고 ‘과학기술특별봉사단’을 출범했습니다. 이후 매주 각 기관 대표와 함께 온라인 화상회의를 하며 과제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COVID-19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 대한 지원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소규모 집단감염의 주요 원인이 되는 종교시설에 화상 예배 시스템 등을 제공하는 기술적 지원을 하고, 과학기술 전문성을 살려 대구·경북 등 피해 지역 중소기업과 현장의 애로 수요를 파악하여 비대면 자문 등의 채널을 상시 운영하고자 합니다.


이처럼 당장은 과학기술이 필요한 분야에 집중하고 있으며, 추후 점차 역할을 확장시켜 급속한 사회 변화가 불러올 다양한 사회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작년 하반기에는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 규제가 큰 이슈였습니다. 과학기술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국가적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지원하고 육성되었어야 할 소재·부품 분야에 너무 늦게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닌가 하는 

    각계의 반성이 잇따랐습니다. 

    관련 분야의 저명한 전문가로서 위 사태의 교훈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유사한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일본과의 무역 마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정식으로 국교를 맺은 1965년 이후 한 번도 무역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일 수출입 관계를 일컬어 일본의 한 경제평론가는‘가마우지를 이용한 물고기 잡이’에 빗대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소재·부품 산업에 있어 의존도가 높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일본 수출 규제, 화이트리스트 배제 사태는 국내 관련 산업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교훈을 남겼습니다.


소재·부품 산업에 대한 지원은 최종 제품보다는 원천기술의 확보와 축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결국은 기업 간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이 생태계 안에서 기술 축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는 일시적 R&D 지원만으로는 어렵습니다. 기술은 물론 각종 규제 등 우리의 환경과 약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20~30년간 장기 계획으로 일관되게 지원해야 합니다. 소재·부품 산업 분야뿐 아니라 모든 산업분야에 걸쳐 제대로 된 결과를 얻으려면 왕도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긴 안목으로 꾸준히 기술을 축적하고, 실패를 용인하며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길뿐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30년 이상 재직하시면서 다양한 직위를 역임하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 이뤄내신 성과들을 보면 교육인으로서, 

    연구자로서, 또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혁신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많이 시도하셨습니다. 

    이러한 열정과 추진력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하든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설정한 비전을 구성원 모두와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어디로 나아가는지 알고 가는 것과 아닌 경우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서울대에서 학부장, 학장, 부총장 등을 지내며 조직의 규모, 역할에 따른 교육 너머의 행정 메커니즘에 대해 배웠고, 그 과정에서 학생과 학교 구성원 사이의 ‘소통’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신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소통’이 전제될 때, ‘융합’도 가능했습니다. 100여 년 전,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는 우리 눈이 색을 인식하는 과학적 원리를 심도 있게 연구한 끝에 점묘법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구축했습니다. 이와 같은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교육에서 시도해보고 싶었는데, 이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상호 이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학부장을 지내며 미술대학 디자인 분야와 기계공학의 연계전공을 추진했고 그때 만든 수업이 ‘0의 예술적 의미’라는 강의였습니다. 이후에도 의과대학과의 융합 연구,혁신 공학교육을 위한 창의성 센터 설립 등을 추진했는데, 학문 간 융합을 위해서는 소통이 먼저 이뤄져야 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학교에 오래 있다 보니 학생들, 신진 연구자들의 가능성과 능력을 좀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회를 주고, 참여할 수 있는 장을 확대해서 청년 세대만이 갖고 있는 창의성을 기존의 문화와 지혜롭게 풀어내는 것이 현 시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과총에서도 조직의 정체성에 맞게 새로운 시도들을 잘 적용해보고 싶습니다.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자와 교육자로서 오랜 기간 헌신하시다가 이제는 과학기술인 전체를 대변하는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한평생 과학기술 분야에 몸담으신 선배의 입장에서, 후배 과학기술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과학자’가 연구실에서 연구하고 논문만 쓰는 모습은 이제 사라지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과학기술이 사회 전반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소통과 상생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과학기술인의 사회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사회·경제 분야와 융합되어 국민들의 일상 영역에서 여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새로운 유형의 인재가 필요합니다.


세계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혁신이 계속 시도되고 있습니다. 강의실도 교수도 없이 세계를 돌며 학습하는 ‘미네르바 스쿨’, 학생들끼리 프로젝트를 통해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에꼴42’ 등 혁신적 대학들의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고, 졸업생들의 평판과 커리어도 좋습니다. 우리 교육 시스템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하고, 또 이런 시스템에 맞는 인재가 되려면 본인 스스로 창의와 융합적 시도를 게을리 해선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과감한 상상하기부터 먼저 주문하고 싶습니다. 이정문 화백이 1965년에 그린 ‘서기 2000년대의 생활의 이모저모’ 라는 만화를보면, 소형 TV가 달린 전화(스마트폰)를 비롯해 전기자동차, 원격 의료진료 등 당시에는 얼토당토않았던 꿈만 같았던 상상들이 지금은 상용화까지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자는 기술이 가능할까 고민하기 전에, 틀을 깨는 생각부터 해야 합니다. 실현은 그다음에 어떻게든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더불어 요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음을 실감합니다. 이번 COVID-19 사태는 국가적으로 위기 상황을 불러왔지만,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로도 작용했습니다. 우리가 보유한 과학기술과 인력의 잠재력이 높다는 사실을 가슴속에 새기며 연구에 매진해주시길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