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기술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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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전망대

‘문샷형,
연구개발’과
‘파괴적 혁신’
에의 도전

곽 재 원

가천대 교수

내년도 예산(안)에서 가장 주목되는 항목이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연구개발(R&D) 부문이다. 내년도 예산은 올해 예산 469조6000 억원에서 513조5000억원으로 9.3% 늘어난다. 무려 43조원이 증가한 팽창예산이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신장률을 보인 것이 이 두 부문이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부문은 23% 늘어난 22조3000억원, R&D 부문은 17.3% 늘어난 24조1000억원으로 각각 책정됐다.

정부가 이 2개 부문에 예산 집중도를 높인 것은 소재·부품·장비의 기술 자립화, 창업지원, 신재생에너지 공급확대, AI(인공지능)를 비롯한 제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과 신산업 육성 등 과학기술·산업정책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의 현재를 강화하면서 미래를 담보 하려는 의지가 예산에 투영된 모습이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계와 연구계는 갑자기 늘어난 예산에 어떻게 대응 할지 머리를 짜내고 있다. 예산 선물(?)에 마냥 즐거워만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 안팎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 특히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어느 나라보다도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게다가 강대국들 간의 기술패권경쟁을 배경으로 한 무역마찰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우리에겐 악재다. 디지털 혁명이 근간이 된 제4차 산업혁명에서의 세계 경쟁력을 갖추려고 발돋움하는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 경제는 성장과 퇴락의 분기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과학기술·연구계는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증거를 보여줄 연구개발, 경제로 나타나는 연구 개발, 국민에 보답하는 연구개발 등 사회적 요구가 분출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과학기술·연구계가 지금부터 어떤 벡터(지향점)을 갖고 나갈 것인지가 국가적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혁신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급박해도 현실대응에 집착하는 것은 하책 (下策)이라고 지적한다. 이럴 때 일수록 어느 한편에서는 묵묵히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이른바 투 트랙의 관점이다.

과학기술혁신에서 ‘문샷(moonshot) 프로젝트’는 오래된 얘기지만 요즘도 여전히 유효한 이론이다. 미소 우주개발 경쟁에서 미국이 옛 소련에 계속 밀리자 1962년 9월 12일 케네디 대통령은 달을 조금 더 잘 보기 위해 망원경의 성능을 높이는 대신 아예 달에 갈 수 있는 탐사선을 만들겠다는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문샷은 ‘달 탐사선의 발사’를 뜻하지만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혁신적 사고를 실제로 만들어 나가는 것을 ‘문샷 싱킹’이란 말을 쓴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일본정부가 국민 생활과 산업을 크게 바꿀 가능성을 지닌 ‘파괴적 이노베이션’을 배출할 새로운 연구개발 제도를 시작한 것이 주목된다. 저출산·고령화, 환경, 과학기술에 의한 프런티어 개척 등 3개 테마를 설정해 5년간 약 1조원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야심적 연구를 밀어주는 제도다. 자금력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뒤지지만 일본의 강점을 살려 혁신적 기술을 내놓는 ‘선택과 집중’을 꾀하는 전략이다.

일본정부가 신설하는 것은 ‘문샷형 연구개발 제도’로서 인류를 달에 보낸 아폴로 계획에서 본을 따고, 실행 주체는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기획국(DARPA)을 모델로 삼았다. 목표는 예컨대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 제로’, ‘우주 엘리베이터의 실현’, ‘고령화로 저하한 신체능력을 회복하는 사이보그 기술’, ‘지구상으로부터 쓰레기 소멸’, ‘인공동면’ 등과 같은 것들로 2015년~2060년께나 실현될지 모를 많은 아이디어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좌장을 맡은 고바야시 요시미쓰(小林喜光) 전 일본경제동우회 대표간사는 “젊은 연구자들의 로망을 환기시킬 수 있는 스토리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파괴적 이노베이션을 만들어 내기위해 구미국가들도 국가가 주도하는 대형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국립과학 재단(NSF)은 ‘10대 아이디어’로 불리는 사업에 착수했다. 2019년 회계연도에 3억달러(약 33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한다.

유럽연합(EU)는 2018년부터 3년간 하이리스크형 연구 등에 27억유러(약 3조3500억원) 의 예산을 투입해 오고 있다. 유럽발 혁신적 기술을 만들어 존재감을 높이겠다는 뜻이다. 그 배경에는 첨단기술에서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중국의 존재가 있다. 예를들면 고도의 계산을 동반하는 연구에 없어서는 안되는 슈퍼컴퓨터다. 최신의 계산능력 랭킹에서 1, 2위는 미국이지만 중국은 500위 이내에 들어간 대수 면에서는 45%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구글의 양자컴퓨터 개발 성공으로 이 경쟁은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이같은 일본, 미국, 유럽, 중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점들을 시사하고 있다.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 문샷형 연구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국도 문샷형 연구개발을 통해 미래를 향한 파괴적 혁신에 도전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