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기술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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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전망대

일본의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하면서

이 장 재

kistep 혁신전략연구소 소장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현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급소를 찔린 아픔을 느끼고 있다. 향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기로 한 조치가 현실로 다가오게 되면 우리의 전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 올 것으로 예상된다. 최악 시나리오의 경우 1,100여 개 품목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일본의 일방적 조치의 이면에는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의 첨단 산업을 견제하기 위한 일본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다고 하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단순한 한국 법원의 강제노역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보복조치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이번 조치가 일회성이 아니라 향후 뉴 노멀(new normal) 상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설령 사실이 아닐지라도 우리의 관점에서는 동 해석을 기반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전제를 기반으로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기 위한 대응이 요구되며, 우리 과학기술계의 핵심 역할 또한 여기에 두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적 대응의 기본적 속성은 중장기적 관점에 비중이 두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당장 대체가 가능한 기술이 존재할 때는 단기적 대응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기술을 개발하거나, 개발된 기술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실증화 과정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문제해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된다. 따라서 일본의 소재 품목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신속한 대응도 한편 필요하나, 중장기적 관점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대응 방안 모색도 함께 이루어 져야 한다. 이번 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의 과학기술정책 전반에 대한 총체적 점검이 이루 어졌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심정이며,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제안하 고자 한다.

소재는 원천기술과 함께 시행착오 등을 통한 오랜 경험이 요구되는 특성을 가진다. 또한 생산제품의 기본재료 혹은 생산공정에서 필수요소로 사용되기 때문에 특정 장치에 소재가 최적화되어 있거나 특정 소재에 최적화된 장치가 구성되게 된다. 소재는 대부분의 경우 생산 공정과 하나의 가치사슬로 엮여져 있다. 반도체 D램 제조의 경우 8개 공정에서 600여 번의 과정을 거쳐 최종 제품이 출고된다고 한다. 소재기술 개발에서는 이러한 생태계적 특성을 반영 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59(99.999%) 혹은 69(99.9999%)순도의 불화수소 개발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대책 준비과정에서 산․학․연이 함께 머리를 맞대 각 필수소재의 특성을 반영하는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번을 계기로 국가연구개발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산․학․연 협력이 이루어지고 실현되었으면 한다. 특히 첨단산업 기술영역에서 그러하기를 기대한다. 첫째 제안사항이다.

둘째, 국가전략기술 도출을 위한 새로운 접근이다.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상시적 모니터링과 도출의 필요성을 제기 하고자 한다. 현재 국가전략기술 도출과정은 대부분 임시적 특정조직(Adhoc TF) 구성을 통해 진행해 왔다. 5년 주기의 과학기술기본계획 수립 경우, 특정한 정부연구개발 프로그램 기획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형태로는 초스 피드 시대에서의 기술적 흐름에 대응할 수 없다. 새로운 조직을 신설하기보다는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에 이러한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물론 각 출연(연)은 산․학․연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이러한 기능을 수 행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예를 들면 소재분야는 현재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산․학․연 연계를 통해 소재분야의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모니터링과 전략기술 도출 기능을 상시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현재는 연구주체가 연구기획을 수행하게 됨에 따라 나타나는 선수심판론의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우려는 각 부처 소속 연구기획평가 전문기관이 과정과 결과에 대해 모니터링하고 조정하면 해소할 수 있다.

셋째, 국가과학기술혁신전략회의의 설치 필요성과 실효적 운영이다. 이번 핵심소재 수출규제와 같은 사안이 발생 했을 때 작동되어야 할 조직이다. 국가과학기술의 최상위 기능을 수행했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이번 정부 들어 국가과학기술심의회로 조직이 축소되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흡수되었다. 총리가 주재하는 과학기술관계장관 회의가 부활되어 운영되고 있으나 여전히 국가전략으로서의 과학기술에 대한 논의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제는 경제 사회적 목표를 구현하는 수단으로의 과학기술혁신정책을 활용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러한 국가정책 거버 넌스 형태로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 또는 새로운 세계 정치경제질서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과학 기술혁신정책이 국가경영의 핵심정책으로 다루어지고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과학기술혁신이 부문 정책이 아니라 모든 국가정책의 기반을 구성하는 정책적 위상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통령실 소속 국가과학기술혁신전략회의 설치와 함께 실효적 운영을 위해 관련 정부부처에 과학기술혁신관 조직을 신설 하여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과학기술혁신관은 과학기술혁신에 관한 사항에 대해 부처 장관 등을 지원 하는 조직으로 범부처 혹은 부처간 논의 및 협의 혹은 조정이 필요한 사안이 발생하는 경우 부처를 대표하여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유사한 사례로는 이스라엘의 과학기술 관련 부처가 운영하고 있는 수석과학관실(Office of the Chief Scientist) 제도를 들 수 있다.

이번 일본의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가 가져올 영향에 대해서는 결코 침소봉대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응방안은 이를 전제로 마련하여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