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기술정책연구소

KIST 본원


 먼저 지난달부터 차기 연우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하시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 드립니다.


  KIST에 몸담고 계신 분들도 연우회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연우회를 대표하여 그 최근 현황이나 활동에 대해 간략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우회가 만들어진지는 꽤 되었지만, 활동이 미비했던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연우회를 통한 포상제도 등 활발한 활동들이 시작된 것은 1999년도 저의 원장 취임시기 부터였습니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포상제도는 99년 당시 홈커밍 행사를 진행하면서 과거 KIST에 공로가 많은 분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시작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공로상‘을 받으신 분이 초대소장과 과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하신 최형섭 장관님이시고, 삼보컴퓨터 회장을 지내신 이용태 박사님, 그리고 ㈜우영 대표였던 박기점 회장에게 ‘자랑스런 KIST 동문상‘을 수여하였습니다. 이렇게 총 세 분을 선정하여 공로상과 자랑스런 동문상을 수여하였고, 이 제도가 연우회 역사의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우회의 회원 가입 조건이 까다롭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가입 조건은 따로 없습니다. KIST를 거쳐 간 분들이라면 모두 다 연우회의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제13대 연우회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으신 목표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KIST를 거쳐 간 수많은 분들이 많은 업적을 이루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장직을 맡았을 때도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점이었습니다. 기록이라는 것은 KIST가 걸어온 역사이며,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고, 대외적으로 KIST를 홍보하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KIST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KIST의 중요한 자산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 바로 KIST이므로, 과학기술이 어떻게 도입되고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찾아서 정리하고 잘 보존해두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의 발자취를 제대로 찾아내고 기록해두는 것이 제가 연우회 회장으로서 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업을 할 수 있는 바탕은 전임 오명환 회장 임기 때부터 시작했던 KIST 초창기 근무자에 대한 조사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명부는 조만간 마무리하여 책자로 발간할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KIST OB(old boy) 선배님들은 연구소를 떠난 뒤에도 중요한 역할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고경력 연구자들은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자산인데, 그분들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회장님의 철학을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KIST에 몸담고 계셨던 고경력 선배 연구자의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배 연구자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지식과 경험은 하나의 작은 도서관으로 비유될 만큼 개개인이 보유한 경험은 소중하고 지식의 양은 방대합니다. 다만 이들의 경험과 지식을 표현하고 교류할 장이 없었던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앞서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그 부분과도 맥이 맞닿아 있다고 하겠습니다. 고경력 연구자들의 경험들이 기록되고 공유될 수 있는 장이 있었다면 기관 내 새로운 일이나 사업을 추진하고자 할 때 그러한 것들이 하나의 기준이 되어 기관의 방향성을 제시해주었을 겁니다. 앞선 선배들이 새로운 변화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이 있다면 그 기록들을 통하여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여 보완해 나갈 수 있고, 또 반대로 성공을 했다면 성공 요인을 파악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연구조정부장으로 일했던 당시, 과거에 기관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새롭게 추진했던 정책과 조직들을 하나씩 다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미진하고 아쉬웠던 부분들을 개선 해나가고 시정해나가는데 참고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은 선배 연구자들이 기록하고 정리하는 노력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 또한 선배들의 발자취를 알고자 끊임없이 물어보고 선배들은 후배들을 격려하며 더욱 발전할 수 있게끔 응원하는 관계로 이어져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연우회가 하나의 울타리가 되어 KIST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과학기술계에서 지금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이슈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국내에서도 탈일본, 소재·부품 자립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 기술력에 의한 부품

국산화는 중장기적과제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국내 산업 및 과학기술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전 과기부 장관으로서 그 대응 방안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산화, 소재 개발 등 자립의 문제는 최근 국내 경제 상황에서 더욱 부각된 것이지만 실제로는 20여 년 전부터 제기되어왔던 이슈입니다. 현실적으로 기업은 가장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생산하여 제품을 만들어내고, 기업 간 서로 분업화하여 가장 경쟁력 있는 가격에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당연한 경제 논리입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도 국산화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국산화의 주요 역할을 대부분 연구기관, 벤처기업, 중견·중소기업들이 해왔는데,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을 받고 소재, 부품을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그 소재를 대기업이 자사의 생산라인에 투입하여 대체하기까지의 과정에는 수많은 변수가 발생할 수 있고 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결코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일반 사람들에게 0.0001%와 0.000001%의 차이는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기업의 생산 라인에서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만큼이나 엄청난 차이입니다. 회사마다 제조 공정 시스템의 차이가 있기 마련인데, 대기업 내 생산 라인에 중소·중견
기업의 소재를 투입하기 위해서는 품질에 대한 검증이 필수적입니다. 완전한 검증을 위해서는 생산 라인 하나를 시험가동해봐야 하고 이를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소재 국산화의 문제가 말처럼 단기간에 해결되기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소재국산화가 필요한 부분이고 이를 실현해야 선진국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린 생산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고,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애로사항들을 정부와 기업 그리고 민간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이기 때문에 대기업들보다 당면한 자립이 어려워 더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만큼 정부의 핵심적 역할이 요구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출연(연)이, KIST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시는지요?


아시다시피 KIST 내에는 유수의 엔지니어들과 소재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소재·부품 자립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면 연구소 차원에서 이를 기획하고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여, 연구 개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소재에 관한 연구는 KIST가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재·부품의 국산화 실현에 대한 연구에 KIST가 매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과학과 기술, 이 두 가지가 균형 있게 정립되어야 합니다. 과학과 기술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반도체의 기본 개념을 다루는 전자공학도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물리학과 화학에서 파생되었듯이 기초과학의 발전은 기술집약적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일부입니다. 대부분의 요즘 과학자들은 자신의 영역, 분야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소재·부품 자립화를 위한 연구 기획 과정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정책 분야의 전문가들도 현장의 연구자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국가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KIST 차원에서 솔루션을 제시하고 동시에 KIST와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며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99년부터 ’03년까지 KIST 원장직을 연임하며 KIST의 성장과 함께 하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KIST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셨는데, 과거의 KIST와

 현재의 KIST, 가장 큰 변화를 꼽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가장 큰 변화는 KIST가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원장이 되었을 당시만 해도 기관의 통폐합과 재분리 과정, 대덕단지로의 이전

추진과 취소 등의 복잡한 환경을 겪으면서 KIST가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던 시기였습니다. 정부의 인식이나 지원이 연구소 출범 초기와 같지 않았고, 유능한 연구원들이 대학으로 이동하며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KIST의 패러다임을 전체적으로 전환하고자 했습니다. 즉, 정체성 확립과 더불어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다짐하며 단결하는 연구자들의 의식 변화를 이뤄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중 제가 목표로 내세웠던 것 중 하나가 “10년 내 세계 Top 10 연구기관 달성”이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고 “하면 된다.”는 의식을 심어 주기 위해서 선언했던 것입니다. 너무 갑작스런 변화가 예상되고 당시로서는 멀게만 느껴지는 도전이었기에 많은 연구자들이 가능성도 없는 이야기 아니냐며 우려했지만, 불가능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조직을 정비하고, 연구 과제도 새로이 기획하며 체계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새로이 도전하는 연구 분야에 필요한 최고의 연구 인력도 해외에 가서 직접 스카웃 해오는 등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를 추진한 결과, 2016년도에 전 세계 연구기관 중 “세계 Top 6 연구기관”으로 평가받으며 제 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KIST를 대한민국 대표 연구기관으로서 재정립 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만, 해내겠다는 명확한 목표 의식과 의지가 있었기에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KIST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장관님께서 이루어 오셨던 여러 성과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전해 주신다면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성과로 10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크게 KIST 원장직을 수행할 때와 과기부 장관을 맡았을 때로 구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KIST 원장을 연임하며 크게 9가지 제도를 개선하여 다양한 성과를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전에는 시행하지 않았던 공모 제도를 KIST에 처음 도입하여 직원 및 연구자를 선발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유능한 연구자들을 스카웃하는 방식이었다면 제

임기 때에는 최고의 인력은 여전히 스카웃하였지만 전반적으로 공채 인력선발 제도를 도입하여 공정한 선발 방식을 갖추었고 이를 통해 국내·외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면서 KIST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두 번째, 연구 과제를 전면 재편하였습니다. 기존에 선임연구원 기준으로 연 500만 원의 개인 과제를 수행하던 관행을, 연구팀 단위로 재편하여 기관과 국가가 필요로 하는 대형과제로 전환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이 직접 연구 기획을 하며 국가 출연(연)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획을 통해서

4개의 연 100억 단위 프런티어 사업을 유치하고, 개인/실 단위로 추진하던 기본 과제도 전면재편하여 본원 내 팀 연구를 본격 시작하며 KIST의 대표 과제들을 발굴

하였습니다.

세 번째, 연구원들의 인식 변화를 유도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기관 내 탄탄한 인프라 구축(연구 장비 지원 등)과

근무 환경 개선을 통해 연구원들이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며 기관의 일원으로 일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매년 소량 구입하여 2-3년 걸려 마련할 수 있는

장비들에 리스방식을 도입하여 연구 초기에 필요장비를 전량 구입하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효율을 높이고, 그 성과가 신속히 도출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였지요. 그 결과 연 특허 및 논문 게재 수가 2배 이상으로 증가하는 성과가 나왔습니다.


네 번째는 글로벌 역량 강화입니다. 세계 Top 10 연구기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제화가 절실한 상태였습니다.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2000년도부터 현재 대덕에 있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의 기반이 된 IRDA(International R&D Academy)를 설립하고, 태국에 위치한 AIT(Asia Institute of Technology)와 공동 학위를 수여하고, 또 연구실에서는 영어 세미나를 실시하고, 행정에서는 문서를 영문으로 작성하는 등 국제화를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추진하였습니다.


다섯 번째는 기술사업단 설치입니다. 과거에는 연구 투자비용에 대해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식이었지만, 기술에 대한 실질적 가치 평가를 하고 이에 기반하여 로열티를

받는 제도로 전환하였습니다. 당시로는 획기적 변화였지요. 이런 평가 제도를 도입하여 제대로 된 평가를 한 결과 예년에는 2억 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로열티 수입을

20억 원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여섯 번째는 강릉분원 설립입니다. 이전까지 출연(연)의 지역분원 설립은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기관의 자체추진을 통해 분원을 설립한 사례는 KIST 강릉분원이 최초였습니다. 부지에 대한 무상 영구임대라는 형식도 연구기관 사상 최초로 지자체와 공동 실시한 성과입니다. 특히 천연자원이 풍부한 지역 특성을 살려 천연물 연구에 특화된 분원 연구소를 설립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 Smart Farm 개발 등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여 자랑스러운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요.


일곱 번째, 타 연구 기관을 선도하는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세계 TOP 10 연구기관을 목표로 조직과 평가 제도를 재편하였음은 물론이고, 기존의 포상 제도를 대폭

개편, “이달의 KIST인 상”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모든 직원이 누구나 공로가 있으면 포상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유급휴가와 포상금을 수여하였고, 1년에 한 차례

“올해의 KIST인 상”을 포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무행정직원이 이달의 KIST인이 된 적도 있습니다.


여덟 번째, 연구자들의 목표 설정 방식을 재정립하였습니다. 시작부터 연습단계가 아닌 실전 단계로 돌입하여 단기간 내 연구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 예로

제가 유치한 프런티어 사업 중 하나인 마이크로시스템 분야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세계에서 개발된 캡슐형 내시경 부품 중 최고의 마이크로 부품을 입수

하여 제작하도록 하여 1년 만에 시제품(Prototype)을 제작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견된 보완해야 할 점들과 국내에서 개발해야 하는 부품을 파악하고, 이 목표를

단계적으로 실천하여 캡슐형 내시경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연료 전지팀도 수소전지자동차 개발을 위해서 연구 시작 반년 만에 수소연료전지

시제품을 제작하고, 그 해 개최된 대한민국과학제전에서 골프카트에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하여 전기자동차의 모델로 시운전에 성공하였습니다. 모두 목표 제품을

제작하고 그것의 장단점을 파악함으로써 연구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인 사례입니다.

마지막으로, 직원에 대한 자체 교육 체제를 처음 도입하였습니다. 제가 원장이 되기까지 정식 직무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입연구직들과 행정직원,

그리고 선임급·책임급 연구원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체계적 교육을 시행하였습니다. 보직자들과 연구책임자 및 행정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직급별 연찬회를 실시하여

기관의 운영 방침과 철학을 공유하고, 단합을 도모하여 업무의 효율을 높였습니다. 이러한 교육 제도 확립이 향후 KIRD로 확산되었습니다.

다음은 2003년 과학기술부 장관 시기의 성과들로,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연구자로서의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과학기술계의 도전 정신을 함양하고자 했던

점이 저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하겠습니다. 대덕에 있는 국립과학관에 현장 사무실을 설치한 뒤, 매주 내려가서 연구기관장을 비롯한 연구자들과 접촉하여 현장의 애로사항을 수렴·해결하고자 정기적으로 소통하였습니다.

정부 과제의 경우 연구 결과에 대한 평가와 지원 제도를 새로이 정립한 바 있습니다. 과학기술부 장관 시절, 프런티어 사업 3년 차로 연구 수행에 대해 평가해야 할

때였는데 그 당시 여러 과제 중 두 개가 최하위 평가를 받아 연구비가 삭감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Frontier’ 의미 자체가 어느 한 연구 분야를 선도하는

역할이며, 도전적인 과제들인데 연구가 3년 만에 평가하여 성공여부를 판정하여 차등 적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위로 평가된 과제에

대해서는 연구의 성실 여부를 판정하게하고, 이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제공하였습니다. 이뿐 아니라 KIST 원장시절에는 뇌과학과 스핀트로닉스(차세대반도체)
분야에 대해서는 연구 시작 후 3년 동안 평가를 면제함으로써 연구자들에게 다방면으로 도전할 수 있는 연구의 장을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장관 재직 시, 연구 과제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연구비 지원 또한 종료되는 것이 관례였는데 저는 성공한 사람에게는 포상의 의미로 연구 종료 후 1차 연도에 연구비를 자동 제공함으로써 연구 과제 종결 뒤에도 새롭게 연계하여 계속 연구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도전적이고 획기적인 연구 결과물은 연구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KIST에서 30년 이상 유기화학 및 정밀화학 분야 연구자로, 또 원장으로 계셨습니다. 이후 국정 운영에도 참여하셨으며, 최근에는 교육 분야에서 총장

으로 더십을 발휘하고 계시는데요. 장관님의 다양한 경험에 비추어 후배 연구자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연구자로서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관과 국가의 목표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연구를 추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변화는 내 주변에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변화를 스스로의 목표와 조화를 잘 이루어서 적응해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주변 상황이 변한다고 하여 자신의 연구

목표가 수시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관과 국가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목표 달성이라는 연구의 지향점은 변함없이 가지고 가되, 자신의 연구(기술)가 어느 쪽에서 쓰이

느냐에 맞춰서 적응하고 바꿔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분야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우선 나의 목표와 더불어 국가와 기관을 위해 연구자로서 내가 달성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심하고, 연구자로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어떤 연구자로 기억되고 싶은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연구자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