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기술정책연구소

KIST 본원

인터뷰


  한국, 특히 KIST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Ana) 학부생때부터 나중에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는데, 지도교수가 KIST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미 독일에 있는 학교에 지원서류를 제출한 상태였기 때문에 독일에서 공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지금의 지도박사님인 디억헨켄스마이어 박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름만 보고선 독일 분이니 당연히 독일에서 온 메일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한국’에 있는 연구소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깜짝 놀랐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한국이라는데 어떡하지? 하고 상의했을 정도였으니까.

(Dang) 지금 생각해보니 한국에 오게 된 것이 우연에 가까운 인연이었던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 호치민에서 공부하다가 KIST UST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받게 되었는데, 사실 그 전에는 한국에 대해서는 엄마가 보던 한국 드라마를 통해 알고 있던 게 전부였다(웃음).


(Zehra) 학부 때 고려대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1년간 한국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사실 그 때는 놀러다니기만 해서 나중에 한국에서 연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학원 유학을 가려고 생각 중에 캐나다와 한국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한국으로 오길 정말 잘했다. 로봇 분야 연구에서 한국, 특히 KIST는 훌륭한 여건을 갖춘 연구소다.


  막상 한국에 오고 나서 예상과 달랐던 점을 하나 꼽는다면?


(Ana) 한국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처음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너무 발전한 나라여서 놀랐다. 사회 모든 면이 생각보다 발전해 있었고, 역동적이었다. 공항의 입국심사 절차가 친절하고 빨랐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예상외로 (웃음) 한국 사람들은 무척 친절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연로한 분들도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 일처럼 도와주셨던 게 좋았다.

(Dang)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기억이 많이 난다. 공항에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분이 한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짧은 영어로 말씀해 주셨다. 엄청 배가 고팠는데 택시 기사분이 주셨던 떡도 맛있었다. 실은 그때 엄청 배가 고팠었다. 그게 한국에서의 첫 기억이고, 지금도 그 이미지가 선명하다. (웃음)
한국인들이 친절하다는 의견에 동의하는데, 아내와 내가 여기서 지낼 집을 계약하는데도 랩메이트가 정말 많이 도와줬다. 부동산 계약과 관련한 복잡한 서류들을 한국어로 작성하는 게 참 두려운 일이었는데.. 그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아무 것도 못했을 것 같다.


(Zehra) 한국에 오기 전에는 유교 문화권의 국가라서 문화적 차이를 크게 느끼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어렵고 외국인을 꺼려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다. 물론 그런 면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한국은 개방적인 국가다. 특히, 6년 전에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와 비교하면 한국의 분위기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외국인 연구자로서 KIST에서 생활하면서 혹시 불편한 점이 있었는지?


(Dang) (웃으며) 복잡한 서류 양식들, 그리고 통합정보시스템 이야길 해야 할 것 같다. 양식을 영어로만 통일하면 안 되는지 모르겠다. 한국인 직원들이나 연구자들도 다 영어를 잘하는 데… 외국인들은 매번 주위의 한국인들에게 물어봐서 해야 하니까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정보시스템 상의 영어 메뉴가 점점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Ana)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으윽, 서류들… 통합정보시스템이 한 번 대규모로 업그레이드된 적이 있는데 그 기억이 많이 난다. 행정적인 서류 작성이 필요할 때마다 한국인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무척 미안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기 때문에, 자주 써야 하는 기능들을 노트에 적어 순서를 외워두고 있었다. 화면을 캡쳐해 놓고 여기에는 뭘 입력해야 하고 그다음 뭘 클릭하고.. 이런 식으로. 그런데 시스템이 바뀌고 나니까 다 다시 익혀야겠더라(웃음). 외국인을 위한 매뉴얼 같은 게 잘 되어 있으면 좋겠다.


(Zehra) 내 경우에는 과제와 연구 간의 괴리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연구팀의 일원으로서 함께 해야 할 과제도 있고 또 내 학위논문은 따로 또 해야 하고.. 이건 외국인 연구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만약 KIST에서 공부할 계획으로 있는 (외국의) 후배들에게 조언을 할 수 있다면?


(Zehra) 리스펙트(Respect). 존중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솔직하게 내 의견을 말하는 법인데 한국인 친구들이 가끔 그렇게 말할 때가 있다. 여기서는 선배나 상사를 비판하는 건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우리 연구팀에서는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편이지만…(웃음).

(Dang) 세 가지를 당부하고 싶은데, 첫 번째는 열심히 일할(hard-working) 각오를 다지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실험실의 동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는 점, 그리고 세 번째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오라는 것.

(Ana) 약간의 노력, 아니 아주 작은 노력을 기울이기만 해도 KIST의 진정한 일원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역사를 조금만 공부하고 문화적 배경에 대해서 이해하기만 해도 외국인으로 겪을 수도 있는 소외감 같은 것들이 많이 사라질 것이다. 한국어 공부? 아주 작은 노력만 기울여도 훨씬 나아진다. 이도저도 힘들다면 오픈 마인드를 갖고 웃어보이기만 해도 한국 친구들이 다 도와줄 테니까.


  KIST가 보다 세계적인 연구소(Global Research Institute)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 하는지?


(Dang) 지금도 KIST는 무척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과 수 년만에 국제적인 인지도나 평판도 많이 좋아졌다는 걸 느낀다. 좀 더 세계적인 연구소가 되기 위해…(잠시 고민하다가) 선진국의 연구소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Zehra) 나도 동의하는 부분인데, 해외의 학생들을 유치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나라들과 함께 수행하는 대형 연구프로젝트들이 생각보다 별로 없는 것 같다. 출연연구소이기 때문에 KIST에서 수행하는 과제들의 대부분이 정부 프로젝트들일 수밖에 없는데 해외 기관과의 공동과제들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Ana) 또 언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얼마 전에 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에 갔다가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연사로 오신 외부의 박사님이 열심히 영어로 세미나를 하고 있었는데, 한 문장이 끝나면 곧바로 한국어로 번역을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영어를 이해하고 있는데도…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KIST에서 이룬 성취에 대해서 혹시 설명해 줄 수 있는지? 그리고 KIST를 떠나게 된다면 무엇이 가장 그리울 것 같은지?


(Dang)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있다가 이 곳 KIST에 오고나서 정말 의미 있는 연구를 하게 된 것 같다. 이산화탄소 저감에 활용할 수 있는 촉매 연구를 하고 있는데, 기존 기술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가격도 저렴한 촉매를 개발하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졸업하고 나면 KIST의 장비들이 가장 그리울 것 같다(웃음). KIST의 연구장비와 인프라는 정말 훌륭하다.

(Zehra) 돌이켜보면 여기 오기 전까지는 로봇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 같다. 연구자 개인으로서도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해 볼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하고 연구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주면서 여러 가지 지원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감사드리고 싶다. 나중이 되겠지만 KIST를 떠올린다면 실험실의 내 자리가 제일 생각날 것 같다. 책상과 컴퓨터. 아 그리고 내 (한국의) 친구들! (웃음)

(Ana) KIST의 연구 여건이나 캠퍼스도 정말 좋지만, 함께 공부했었던 랩메이트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지금은 이스라엘에서 박사과정 중인데 얼마 전에 잠깐 한국에 들어 왔을 때 6개월만에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서로를 확인했을 때 멀리서부터 뛰어가 뜨겁게 포옹하면서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그 친구는 다른 어떤 존재로도 대체될 수가 없다. 그리고 헨켄스마이어 박사님이 그리울 것 같다. 예정대로라면 내년에는 박사학위를 받게 될 것 같은데 그분은 내게 두 번째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분이다. 내가 전문성을 기를 수 있도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주셨다. 감사한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