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기술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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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신냉전 시대를
과학기술로
뚫고 나가자

곽 재 원

가천대 교수

기술패권 경쟁을 배경으로 한 미·중 무역전쟁이 경제를 넘어 대국의글로벌 리더십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오늘날 미·중 무역량은 하루 20억 달러에 달한다. 1980년대의 연간미·소 무역량 20억달러와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계속 진행된다면 양국경제에는 물론 세계 경제에도 큰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기술과 경제가 두 나라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한국은 고래싸움에새우등 터지는 형국에 처하면서 큰 위기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중국이 우리에게 동시에 이른바 ‘후미에’를 강하게 내밀고 있기때문이다. 1600년대 기독교 금지를 선포한 일본 막부에서는 십자가에못박혀 매달린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목재 또는 금속 성화상(후미에)을 기독교 신자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밟고 지나가게 하여,예수나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때문에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거나 밟지않으면 기독교 신자로 간주해 체포했다. 현대에서는 어떤 결정 사항에반대한 사람을 색출해 내기 위한 방법을 후미에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은 차세대 통신규격 ‘5G’의 통신 인프라에 중국 화웨이의 제품을사용하지 말 것을 동맹국들에 촉구했다. 미국은 그 다음 조치로 각국기업이 화웨이에 미국산 하이테크 부품을 공급하지 말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이 화웨이 배제를 계속하면서 각국의 대응은 3방향으로 나눠지는모습이다. 첫번째는 미국에 따르는 길이다. 5G로부터 화웨이를 내모는나라들이다. 그 필두에 호주가 있고, 공식적으로 표명은 않고 있으나일본도 이 부류에 들어간다. 두번째는 화웨이 제품을 엄격한 감시 하에두고, 정보누출 위험이 있는 제품과 부품에 한해 배제토록 한다는 그룹이다. 그 대표격이 영국이다. 세번째는 감시와 경계는 소홀히 하지않으면서 화웨이 배제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독일이다.

중국은 이에 맞서 미국의 방침에 동조하지 말라고 호주·유럽·일본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심하고 노골적인 압박을 중국과 미국으로 동시에 받고 있다. 정부간 회의는물론 주요 인사들 간의 대화에서도 그렇고, 심지어 주요 기업들을 불러 자기들 입장을 강요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세계 최초의 5G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국은 5G 세계 확산의교두보인 셈이다. 여기서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IT 강국 코리아가 겪는 패러독스다.한국경제가 이 두 나라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타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도 공격을 받는 큰 이유 중의 하나다.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도 우리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학기술계는 이러한 작금의 사태를 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신냉전체제를 살아가는 전략’이라는 과제를 잡아채야 한다.

먼저 미국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미국은 1957년 ‘스푸트닉 쇼크’ 이후 소련과의 본격적인 우주개발 경쟁에 들어가1969년에 달표면 도착을 달성했다. 일본은 지난 80년대부터 90년대 미국과의 무역마찰이 심할 때 비슷한 경험을했다. 미국은 일본세를 극복하기 위해 ‘재팬 배싱(타도)’을 외치며 90년대 초부터 IT를 기반으로 한 신경제정책을추진했다.

이번 미·중 마찰의 경우에는 5G 개발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미국 군관계자들의 초조감이 배경이 됐다는 게 유력한분석중의 하나다. 통신뿐만 아니라 지금 세상은 AI(인공지능)등의 분야에서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필경수년이내에 세계가 크게 변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그것이 상업적인 분야에 머물 때는 문제가 별로 없지만군사기술로 전용될 경우엔 어떻게 될 것인가. 단적으로 말해 육해공이라는 영역에서 미군의 패권을 위협하는 세력이등장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중국의 군사예산이 미국을 웃도는 날이 와도 미국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군사적자산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과 우주라는 새로운 영역에서는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펜타곤이 이 점을 특히 우려하고있다는 게 일본측 분석이다. 미국 군관계자들은 2015년부터 오바마 정권의 온건한 대중(對中) 노선을 노골적으로비난해 왔다고 한다. 바로 중국의 세계경제권화 전략인 ‘일대일로’와 세계 기술강대국 전략인 ‘중국제조 2025’ 라는구상이 나온 시점과 맞물린다. 미·중관계는 역시 안보 문제(남지나해)와 기술개발경쟁(AI, 5G)을 둘러싼 장기 패권다툼으로 갈 전망이다.

한국은 양발을 중국에 붙잡히고, 미국과 얼싸안은 채 양쪽이 내민 후미에에 망설이고 있는 형국에 놓여있다. 이러한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체제에서 한국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굳건한 과학기술정책과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제2의 ‘과학기술 입국’의 길로 가는 것이다. 한국만의 독자적인 기술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