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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과 불연속에 대한 두려움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급속한 기술진보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기술 진보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다. 장밋빛 전망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우울한 전망을 쏟아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면 이러한 반응이 우리에게 처음으로 닥친 일은 아니다. 기술의 진보는 그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그때마다 기술이 미치는 영향은 개별 집단에 따라서 명암이 엇갈려 왔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보면 기술진보가 고용을 감소시켰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지난 20세기 동안 전 세계의 총 인구 대비 고용의 비율은 상승하였다. 실업률 역시 단기적으로는 경기 변동의 영향으로 등락을 거듭하였지만 장기적으로 상승하지 않았다.


그러나 혹자들은 현재 다가오는 기술의 충격과 그 파급효과는 과거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인데 이러한 시각이 생기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고 보여 진다. 첫 번째는 기술의 진보가 불연속적(disruptive)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기존의 기술진보는 점진적(evolutionary)인 성격이었다면 현재 혹은 미래의 기술진보는 급진적(revolutionary)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급진적인 변화는 항상 미래의 불확실성(uncertainty)을 높이게 된다. 두 번째 요인은 기술진보의 파급효과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보기 때문에 나타나는 불안감이다. 즉, 기술진보가 일어나면 이것이 자본(기계)에 체화되어 생산성을 높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일자리를 기계가 모두 대체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이다. 후술하겠지만 이것은 기술의 파급효과 중에 매우 일부분만을 본 것이다.


기술진보와 일자리 양의 변화


기술이 자본에 체화되어 자본의 가격이 하락하면 기업은 당연히 자본을 더 많이 고용하고 대신 노동을 적게 고용하게 된다. 즉,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substitution effect)하는 것이다. 물론 생산기술의 성격에 따라서 대체의 정도는 달라지겠지만, 고용의 양이 줄어드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그 효과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의 비용이 하락하고,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기 때문에 기업은 생산비가 절감된다. 이 절감된 생산비를 이용하여 기업은 종전의 생산량보다 더 많은 생산(scale effect)을 하거나 혹은 절약된 생산비로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할 수도 있다. 기존의 생산물을 더 많이 생산하게 되면 기존 산업에서 고용이 늘어난다. 이때 고용이 늘어나는 정도가 기계로 대체되어 줄어든 고용보다 많을 수 있다. 혹은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게 되면 기존의 산업에서는 고용이 감소하여도, 다른 산업에서 고용이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두 가지의 상반된 효과가 존재한다. 이론적으로 어느 효과가 더 크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술한 바와 같이 총 인구 중에서 일하는 사람의 비중은 장기적으로 더 늘어났다.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100년 전보다 현재의 생산성이 훨씬 높기 때문에 100년 전의 생활수준을 현재 유지하려면 그 당시 근로시간의 1/5~1/4 정도만 일하여도 가능하다. 그러나 오늘날 그렇게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자발적으로 그 이상을 일하고 싶어 한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한편, 기술의 진보 역시 현재 우리가 예측하는 것처럼 생산성을 급속하게 증가 시킬 것 같지도 않다. 실제로 근래의 미국 경제 생산성 증가는 연간 4% 미만이어서 기하급수적 증가(exponential growth)를 한 적이 없다. 그리고 Gordon 이나 Autor 같은 경제학자들은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오히려 생산성은 심각하게 감소하여 새로운 형태의 스테그네이션(stagnation)이 올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있다1). 이들의 주장은 미래에 AI의 등장으로 풍요한(superfluous) 시대가 와서 실업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원의 한계(scarcity)를 걱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진보와 일자리 질의 변화


그렇다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기술의 변화가 노동시장의 고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의 양이 감소할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으나 일자리의 질적 측면에서는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즉, 기술진보는 노동시장에서 교육과 훈련을 많이 받은 숙련근로자(skilled workers)와 그렇지 못한 미숙련근로자(unskilled workers) 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술진보의 성격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그 영향은 달라진다.


지금까지 기술진보의 성격을 간략히 살펴보면 우선 19세기의 획기적 기술발전 들은 대부분 미숙련근로자를 더 많이 사용하는 미숙련 편향적 기술진보(un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였다. 이 당시 주요한 기술은 물적자본(physical capital)과 원재료(raw material)를 많이 사용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물적자본의 증가는 고숙련 근로자와 보완 관계가 아니어서, 고숙련자들은 원자재나 미숙련 근로자들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20세기의 대부분의 기술진보는 반대로 고숙련 근로자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숙련편향적 기술진보(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였다. 생산방식에 있어서 배치 생산양식(batch method)과 연속공정 방식(continuous process method)이 많이 사용되었고, 이전의 수력이나 증기에너지는 전기로 대체되었다. 따라서 미숙련 근로자들의 역할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이 급속히 발전한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는 더 가속화 되었다. 이로 인하여 고숙련 근로자와 저숙련 근로자의 임금격차는 크게 증가하기도 하였다.


21세기 들어와서의 기술발전은 과거와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현재와 미래의 기술 충격은 숙련의 수준만으로 설명하기 힘들고, 어떤 직업에서 일을 수행하는 직무(task)의 종류에 따라서도 그 영향이 달라지고 있다. 모든 직업은 주어진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다양한 종류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그 직무의 성격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서 기술진보가 일어났을때 그 직무의 수요가 더 증가하거나 혹은 감소하게 된다. Autor(2015)는 다양한 직무의 종류를 추상적 직무(abstract tasks), 정형화된 직무(routine tasks), 수공 직무(manual tasks)의 세 종류로 분류하였다.


여기서 추상적인 직무는 주로 인지적 능력(cognitive ability)을 필요로 하며, 전산화하기 힘들다. 주로 관리직, 전문직, 기술직 등의 직종에서 추상적 직무를 많이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직무는 최근 발전하는 기술과 매우 강한 보완관계에 있어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고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정형화된 직무는 그것이 단순한 작업이던 아니면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작업이던 상관없이 모두 전산화가 가능한 직무이다. 문자 그대로 정형화된 직무여서 향후 발전할 기술의 성격에 비추어보면 이 직무는 거의 기술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주로 생산직, 사무직, 판매직 등의 직업에서 이 직무를 많이 수행하고 있고, 실제 고용 통계를 보더라도 최근 이러한 직업군의 고용은 다른 직업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수공 직무는 고숙련을 요하는 직무는 아니다. 그러나 이 직무를 많이 사용하는 직업들은 주로 단순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를 자동화하기는 쉽지 않다. 로봇은 인간이 수행하기 어려운 직무는 쉽게 대체할 수 있으나, 인간이 수행하기 쉬운 일은 오히려 로봇이 수행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폴라니의 역설 (Polanyi’s paradox)3), 또는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4)이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수공직무를 많이 사용하는 청소원이나 간병 도우미, 경비 등의 단순 직종의 고용이 최근 들어 오히려 소폭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기술진보가 이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을 자동화 시설로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향후 수공 직무를 주로 하는 직종의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다. 고용이 늘어나는 것과 임금이 상승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직종은 특성상 특수한 숙련이 필요하거나, 혹은 오랜 기간의 숙련 형성이 필요한 직종은 아니다. 따라서 이 직종은 다른 직종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진입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이 크게 상승할 여지가 별로 없다. 정형화된 업무는 직종에 따라서 간단한 교육 훈련만을 받고도 일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오랜 기간의 숙련 형성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서 고용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임금 상승을 기대하기 힘들다. 반면에 추상적 업무를 주로 하는 직종에서는 다년간의 교육과 숙련 수준이 요구된다. 따라서 이 직종은 기술진보로 인하여 인력수요가 증가한다고 하여도 아무나 진입할 수 없다. 따라서 고용 비중이 늘어
남은 물론이고 임금 역시 크게 상승한다.

논의를 간략히 요약해 보면, 최근의 기술진보로 인하여 고용 시장에서는 직종의 양극화(job polarization)가 일어나고, 임금 소득 면에서는 가운데 직종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양극화 현상 이나 소득 분배의 악화가 계속 될 것인가는 향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3) 폴라니의 역설은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알고 있다”라는 폴라니의 말처럼, 사람이라면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별 노력 없이 할 수 있지만 누구도 명쾌한 법칙이나 과정을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기에, 절차(procedure)를 반복하는 자동화 기술로는 이러한 일들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4) 모라벡의 역설은 “지능 테스트에서 컴퓨터가 성인 수준의 성과를 보이게 하기는 쉽다. 그러나 한 살짜리 어린아이의 스킬을 컴퓨터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다.”라는 모라벡의 말처럼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 로봇에게는 힘들고 로봇에게는 힘든 일이 사람에게는 쉬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핵심적이고 보편적인 학문 교육이 중요


앞서 살펴 본 세 가지 종류의 직무는 사실 모든 직업에서 사용된다. 다만 어떤 직무를 더 많이 사용하느냐는 직종에 따라서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생산직, 사무직, 판매직 등 정형화된 직무를 많이 사용하는 직업도 사실상 추상적 직무, 수공 직무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미래의 기술 진보가 앞서 설명한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들 직종에서도 정형화된 직무보다는 추상적인 직무를 더 많이 사용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면 가운데 직종의 임금과 고용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정도도 완화될 것이다. 향후 직종 양극화가 지속되느냐 아니면 완화되느냐는 결국 정형화된 직무보다 추상적 직무를 얼마나 많이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이 추상적인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지적 능력(cognitive ability)을 배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인지 능력을 향상 시키는 것은 직업교육이나 전공교육(special education)보다 일반교육 혹은 교양교육(general education)이 더 중요하다.5) 일반교육이란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모든 학문 분야에서 기초로 활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교육을 의미한다. 이는 다양한 문해력, 정보수용능력, 총체적 조망 능력, 지식 창출 능력, 소통과 공감 및 협동 능력, 합리적 사고와 감성적 정서를 통합하는 능력 등을 배양하게 한다.6) 좀 더 구체적으로는 문학, 사학, 철학, 자연 과학 등의 핵심적이고 보편적인 학문 분야에 충실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7) 이러한 내용에 대한 충실한 이해없이 전공 교육과 산학협력, 창업 등의 교육을 시키는 것은 마치 모래성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날 4차
산업 혁명의 도래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많은 제언에서 이 같은 점은 무시되고 있으며,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도 일반 교육의 중요성을 과거보다 훨씬 간과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과정에서 문과생에게는 과학을 가르치지 않고, 이과생에게는 인문사회 과학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인식을 준다. 미국의 모든 대학은 예외 없이 모든 학생에게 과학 과목 중 최소 하나를 두 학기 이상 수강하게 하는데, 우리나라 대학들은 물리, 화학, 생물 등의 기초 과학과목을 문과생에게 두 학기 이상 요구하는 대학은 단 한군데도 없다.8) 그리고 컴퓨터 코딩을 가르치는 대학은 많아도 computational thinking을 가르치는 대학은 극소수이다. 하지만 미래의 상황이 불확실하고, 급변할수록 이러한 과목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교육이 급변하는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능력(adaptability)을 기르기 때문
이다. 근본에 충실하지 않고 어떻게 변화하는 불확실성에 맞설 수 있단 말인가?


5) 20세기에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를 꼽으라고 하면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의 보편화였다. 20세기 초반부터 미국 교육은 일반교육 (general education)에 치중한 반면 유럽은 특정교육(specific education) 혹은 직업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일반 교육은 특정(직업)교육보다 훨씬 고비용 구조 이다. 반면에 일반 교육의 장점은 교육 내용이 훨씬 유연하여, 지역, 산업, 직업을 옮겨 다닐 수 있는 기능을 길러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특히, 한 개인이 평생을 살면서 한 지역에 머물면서 하나의 직업에 특화한 경우에는 특정 교육이 더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평생을 살면서 최소 2-3개 이상의 직업을 가지게 되고, 지역 간의 이동이 많은 경우에는 일반 교육이 특정 교육보다 훨씬 더 유용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Goldin, Claudia and Lawrence Katz (2008), 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 Harv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참조.


6) 한국교양기초교육원, 『대학 교양교육 컨설턴트 연수 자료집』, 2018. 참조.


7) 여기에는 기초학문 분야와 무관한, 단순 취업 및 창업 관련 교과목, 일상적 상식의 확장이나 취미생활의 정보를 내용으로 하는 것들은 원칙적으로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8) 박진희 외(2017), 『대학 교양 과학교육의 범위와 과제』,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