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기술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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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사회적 갈등

최 연 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


과학기술은 인류문명 발전의 산물이자 원동력이다. 과학기술을
빼고는 문명을 이야기할 수 없으며,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과학기술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로 오면 올수록
과학기술은 더 중요해진다. 사회문화 변동의 주요인으로 발명과 발견을
꼽는데, 발명은 기술개발이고 발견은 과학연구라고 할 수 있다. 말하
자면 과학과 기술이 사회변화와 문화변동의 핵심요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사회이슈를 살펴보면 상당 부분은
과학기술과 관련되거나 과학기술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GMO,
THAAD 전자파, 원전, 방폐장, 라돈침대, 플라스틱 등등 모두가 과학
기술 관련 이슈다. 그만큼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기술 발전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거나 조장하
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과학
기술을 주창하고 있지만, 정작 대중들이 느끼는 과학기술은 사회적
갈등의 요인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과학기술 이슈가 사회갈등의 원인이
되었을 때 과학계와 비과학계 간의 인식 차이는 더 커진다. 실제 시민
사회나 비과학계에서 과학적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터무니없는 비판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계가 그들을 ‘과알못
(과학을 알지 못함)’이라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 영역은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라서 당연히 잘 아는 사람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과학이슈에 대해 대중이나 시민사회가 잘못된 인식을 가지는 데는
과학계의 책임도 크다. 과학이슈가 사회갈등의 요인이 될 때 적어도
정확한 과학적 사실이나 신뢰할만한 데이터를 제시해주는 것만으로도
갈등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역할은 누군가가 과학계를
대신해서 해줄 수는 없다. 그래서 과학문화가 필요한 것이다.

과학문화란 ‘과학기술과 관련된 삶의 양식과 객관성, 합리성, 과학적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 및 과학친화적인 사회
문화’를 일컫는다. 과학문화의 핵심은 과학커뮤니케이션이다. 과학을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과학자와 대중을 이어
주는 것이 바로 과학커뮤니케이션이다. 과학연구자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직접 나서서 대중들에게 설명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과학연구자들은 이러한 과학소통에 익숙하지 않다. 연구자들 중에는 아예
과학소통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연구자는 연구만 잘 하면 된다는 인식, 과학연구는 어렵기
때문에 대중들은 몰라도 된다는 인식 등은 과학커뮤케이션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과학자
들이 과학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인 과학자와 비전문가인 시민사회나 대중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이 바로 과학커뮤니케이터다. 한국과학창의재단 같은 전문기관은 과학커뮤니
케이터를 양성하고 과학소통을 활성화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과학커뮤니케이터는 과학자의 언어를 대중의 언어로
번역해 과학소통을 하는 사람들이다. 대중강연, 과학공연, 과학콘텐츠 개발·보급, 과학체험, 과학기사, 대중교양서
등등 과학소통의 방법은 다양하다. 우리나라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과학선진국에 뒤처지는 것은 과학기술 연구
개발(R&D)역량만이 아니다. 대중의 과학이해 수준, 과학에 대한 태도 등 과학문화 수준의 차이가 훨씬 심각하다.

1985년 영국의 왕립학회(Royal Society)는 ‘대중의 과학이해(PUS :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역사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대중의 과학이해를 증진시켜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과학기술인력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고, 둘째 과학기술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고, 셋째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사결정을 원활히 하고, 넷째 일상생활에서 과학소양을 활용하고, 다섯째 과학기술의 부작용에
적절히 대처하고, 여섯째 과학기술을 문화로 향유하기 위해 대중의 과학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중의 과학
이해나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성원은 지속적인 과학기술 발전을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특히 과학이슈가
사회적 갈등이 될 때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한다. 정확한 과학정보, 객관적 데이터를 제시하고, 대중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은 줄어들 수 있으며,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요컨대 과학소통이 활성화된 과학문화 선진국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