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기술정책연구소

KIST 본원

THEME series

과학기술 역량의 급속한 성장: 기술 자립


그동안 엄청나게 발전해온 한국 과학기술의 특징적 모습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해외기술의 도입에서 출발하였으나 이제 국내기술로 글로벌 프런티어 기술에 도전할 만큼 선진국 수준에 접근하였다. 둘째, 정부출연연구기관은 물론이고 대학, 민간기업도 글로벌 경쟁이 가능할 정도의 연구개발 역량을 확보하였다. 셋째, 산업현장에 필요한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연구개발 인력에서도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게 되었다. 넷째, 삼성, 현대, 엘지, 에스케이, 포항제철 등 세계적인 기술혁신 역량을 구축한 민간기업들을 탄생시켰다. 다섯째, 한국 과학기술의 강점은, 물론 연구개발 역량에도 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과 생산 노하우에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과학기술은 개발도상국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발전 모형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 상태의 과학기술에서 선진국 수준의 과학기술로의 도약을 이룩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렇게 한국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시기는 1980년대,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추구해온 과학기술정책의 핵심 내용들은 (1) 정부 연구개발예산이 대폭 확대되고 민간기업의 연구개발투자가 급속하게 증가하는 등 연구개발 자원의 대대적인 확충을 추구하였다. (2) 기술도입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여전히 계속되었지만, 국내 연구개발 역량의 고도화를 추구하여 독자적인 기술혁신 능력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다만 연구개발 역량의 추가적인 질적 향상과 연구 성과의 상용화 측면에서 여전히 개선 해야 할 부분들을 남겼다. (3) 연구개발에서 민간주도 체제를 정착시키고자 하였다. 핵심적인 국가적 과제들은 여전히 정부 정책의 주요 대상이지만, 민간기업이 기술혁신의 중심체로 등장하였다. (4) 선택과 집중의 불균형 발전에 여전히 초점을 두었지만, 연구개발의 많은 부분에서 다기화, 다층화, 다양화가 이루어져 연구개발의 폭과 깊이가 대폭 확충되었다. (5) 연구개발의 국제화를 가속화하고자 하였다. 연구인력들의 빈번한 국제교류는 물론이고, 한국 기준이 아니라 글로벌 기준이 판단과 평가의 틀로 자리를 잡도록 하였다.


  1. 연구개발투자의 지속적 증가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은 지난 50년간 세계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연구개발 투자, 연구개발 인력, 연구개발 역량, 연구개발 시스템에서 엄청나게 발전하였다. 연구개발투자에서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 국가로 부상하였으며, 연구원 수에 있어서도 이들 국가에 러시아가 추가된 세계 6위의 국가가 되었다. 또 GDP 대비 총연구개발비는 4.24%로 실질적으로 세계 1위이다 (작은 국가인 이스라엘이 1위임을 고려하면). 또한 미국특허(등록) 3위이고, 국제학술논문 12위이며, 박사 연구원이 10만 명인 시대에 이르렀다.



  2.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진화



한국 정부는 1967년 과학기술 전담부처인 과학기술처를 설립하였으며, 이는 당시 개발도상국 중에서 최초의 각료급 과학기술 전담부처이었다. 이후 과학기술 전담부처는 50여년간 한국 과학기술을 1960년대의 개발도상국 상태로부터 현재의 선진국 문턱까지 끌어올리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한편 김대중 정부는 과학기술정책의 집행능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1997년 과학기술 전담부처를 ‘처’에서 ‘부’로 격상하였다. 또 노무현 정부는 과학기술부 장관을 “과학기술부총리”로 격상시키고 과학기술부 내에 과학기술정책의 종합조정을 주관하는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2003년 청와대 내에 차관급의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신설하였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를 표방하면서 고등교육정책과 과학기술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시키는 취지에서 교육과 과학기술을 합친 교육과학기술부를 출범시켰다. 또 과학기술부총리, 과학기술혁신본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폐지하였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육 현안 위주로 운영되어 과학기술 행정이 소홀하게 다루진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비상설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2011년 장관급의 상설 행정위원회로 개편하여 과학기술 부문을 전담하도록 하였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국가 성장동력의 양대 축으로 삼아 기존의 교육과학기술부를 개편하여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전담하는 부처로서 미래창조과학부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하면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흡수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을 결합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발족시켰다. 또 대통령에게 과학기술정책을 적극 보좌하기 위하여 청와대 내에 차관급의 과학기술보좌관을 신설하였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경험을 살려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차관급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출범시켰다.

한편, 최초의 과학기술정책 종합조정기구는 1973년 설치된 “종합과학기술심의회”(국무총리가 위원장)이었으며, 그 기능이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또 정부는 1982년부터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고, 여야 정치인, 국무위원, 재벌 총수, 학계와 연구계 대표 등이 참석하는 “기술진흥확대회의”를 정례적으로 개최하였다. 이 기술진흥확대회의는 1987년까지 운영되면서, 한국 과학기술을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 종합조정기구로서 과학기술장관회의(1996년-1998년), 1999년부터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2013년부터는 국무총리 소관의 국가과학기술심의회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주요 과학기술정책의 수립 및 조정, 국가연구개발예산의 배분과 조정 등을 심의하는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서 “국가과학기술심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대통령 자문기관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와 긴밀하게 연계시키기 위하여 2018년 4월 17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내의 심의회가 되도록 하였다. 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의장(대통령)과 의장이 지명하는 부의장을 포함한 13인의 위원으로 구성되었고, 민간위원들만으로 자문위원들을 위촉하였으며, 제1기는 2017년 12월에 출범하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2008년 이전과 유사한 형태로 복귀한 셈이다. 참고로,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근거 조항을 마련하고 1991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법이 제정됨으로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상설 대통령 자문기구로 공식 출범하였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거버넌스에 대하여, 김대중 정부는 정부출연연구기관 문제의 원인이 연구 자율성의 부족에 있다고 보고 정부의 간섭을 줄이기 위해 1997년 연구회 체제를 도입하였다. 이에 따라 1999년 정부출연연구기관을 기초기술, 공공기술, 산업기술의 3개 분야로 나누고 분야별로 단일 이사회를 갖는 3개 연구회 체제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이들 3개 연구회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관리 감독을 국무총리실로 일원화하여, 부처별 경영간섭을 최소화하면서 범부처 활용체제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2004년 과학기술행정체제를 개편하면서 3개 과학기술계 연구회와 소관 19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국무총리실에서 과학기술부로 이관하였다. 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2008년 공공기술연구회는 해체되고 기초기술연구회는 교육과학기술부로 산업기술연구회는 지식경제부로 그 관리체계가 이원화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정부출연연구기관 운영의 일관성과 자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2014년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를 통합하여 1개의 국가과학기술연구회로 일원화하였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을 추구한다는 차원에서 별다른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채 단일 연구회 체제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3. 연구개발 역량의 고도화


1980년대에 이르러 주력산업의 기술 고도화와 미래산업을 이끌어 갈 첨단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핵심 전략기술의 집중적 개발이 주요 정책과제로 등장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략적 핵심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대표적 정책수단 으로서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하였으며, 1982년에 출범한 “특정연구개발사업”이 최초의 국가연구개발사업이다. 과학기술처가 추진한 특정연구개발사업은 그 명칭에서 나타내듯이 모든 분야의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게 가장 필요한 전략적 핵심기술의 개발에 선택적으로 집중한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한편, 상공부 역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기술혁신을 중요한 정책영역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으며, 1987년부터 시행한 “공업기반 기술개발사업”이 대표적 사례이다. 공업기반기술개발사업은 산업계에서 시급히 개발을 필요로 하는 공통애로기술이나 민간기업의 자체 노력만으로는 수준 향상이 어려운 기술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외에도 1980년대에 시작된 국가연구개발사업은 상공부가 1988년부터 추진한 대체에너지기술개발사업과 1992년부터 추진한 에너지절약기술개발 사업이 있으며, 체신부가 1980년대 중반부터 추진한 컴퓨터, 반도체, 통신 등의 전략적 국가연구개발 프로그램들이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 다수의 대형 국가연구개발사업들이 신규로 추진되었는바, 이는 선진국의 기술보호주의에 대응하기 위하여 국내의 한정된 과학기술 자원을 전략기술 분야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업이 “선도기술개발사업(G7 프로젝트)”이다. 선도기술개발사업은 2001년에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선진 7개국 수준 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2000년대 세계시장에서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전략제품군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제품기술개발 9개 과제와 이에 필요한 원천·기반기술을 개발하는 기반기술개발 9개 과제로 구분하여 추진하였다. 이 사업은 1992년에 시작하여 2001년에 종료하는 10년에 걸친 사업으로서, 최초의 범부처 공동기획 연구개발사업이었고, 정부주도 아래 민간기업들이 함께 기획에 참여한 최초의 연구개발사업이다. 또 이 사업에서 모든 연구과제는 10년 전후의 연구개발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어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중장기사업 이었고, 또 하향식(top-down)으로 기획하여 추진하였다. 이렇게 기획과 추진체제에서 새로운 혁신이 이루어진 선도 기술개발사업은 이후에 추진된 대형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패턴 형성자 역할을 하였다. 이외에도, 1990년대는 많은 부처에서 다양한 형태의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과정에서 각 부처별로 독자적으로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분산형 국가연구개발사업 추진체계도 형성되었다. 1993년에는 체신부 (1994년 정보통신부로 변경)의 정보통신연구개발사업이 본격화되었고 또 환경부의 환경기술개발사업이 시작되었다. 1994년에는 건설부의 건설기술연구개발사업과 농림수산부의 농림수산기술개발사업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1995년에는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기술개발사업이 출범하였고, 1996년에는 해양수산부의 해양과학기술 개발사업이 시작되었다.

한편,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 사업”은 생명기술, 나노기술, 환경기술 등 전략기술을 선택·집중 개발하여 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 정상급 기술력을 확보함으로써 고부가가치 신산업을 창출하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었다. 사업기간은 1999년에서 2013년까지이고, 사업단별로 사업 착수시점부터 10년간 지원하는 사업으로서, 사업단별로 연간 80억-100억원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이 사업을 통해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총 22개 사업단을 선정하여 지원하였다. 또한, “글로벌 프론티어 사업”은 미래 유망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할 세계 최고의 원천기술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었다. 사업기간은 2010년에서 2022년까지이며, 총사업비는 1조 1,910억원이고, 사업단별로 연간 100억-150억원을 최대 9년(2년+3년+4년)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에서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총 10개 연구단을 단계적으로 선정하였으며, 선정된 연구단은 각각 비영리 재단법인으로서 독립된 운영체제를 갖도록 하였다.


  4. 기업의 기술혁신 역량 강화


1960년대 초기에는 정부가 부담하는 연구개발비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였으나, 1970년대부터 민간 연구개발비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82년에는 최초로 정부와 민간이 총연구개발비의 50%를 각각 부담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 1992년에는 정부 부담이 불과 17%일만큼 민간의 연구개발투자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정부와 민간의 비중이 대체적으로 각각 25%, 75% 전후 수준을 유지해오는, 민간 중심의 연구개발체제가 정착되었다. 한편 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도 가파르게 증가하였는바 1980년 0.47%로부터 1990년 1.72%, 2000년 1.98%, 2010년 2.38%, 2016년 3.16%에 도달할 만큼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이렇게 민간주도의 연구개발체제가 확립되는 데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기술개발 지원제도가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의 기술개발지원제도는 사실상 1980년대에 대부분 정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는 조세지원제도, 금융지원제도, 정부구매제도, 연구인력 병역특례제도 등이 포함된다. 기술개발에 대한 조세지원제도는 1981년의 전면적인 세제 개편을 계기로 정비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정부의 일반적인 세제는 감면의 폭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기술개발의 경우에는 오히려 감면의 폭을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었다. 또 1981년에는 기술개발준비금의 적립과 관계없이도 기술 및 인력개발에 대한 세액공제가 가능한 제도가 신설되었고, 기업의 신설 연구소용 부동산에 대한 지방세의 면제, 기술개발 선도물품에 대한 특별소비세 잠정세율 적용, 외국인 기술자에 대한 소득세 면제 등이 이루어졌다. 또 기술개발에 대한 조세지원제도는 이후에도 실효성을 더욱 제고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으며, 특히 조세감면제도의 시효가 만료되는 1986년에 세제를 개정할 때 기술개발준비금의 적립한도를 오히려 크게 확대하였고 또 기술 및 인력개발비의 증가투자분에 대한 세액공제와 이월공제 허용을 새로 추가함으로써 우리나라 기술개발 지원세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한편, 기술개발에 대한 금융지원은 금융기관, 벤처캐피탈 회사, 재정자금, 국가연구개발사업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1981년에 마련된 연구요원 병역특례 제도는 해당 연구요원에게 병역의무를 면제해주는 대신에 연구기관에서 5년간 근무하게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산업계가 우수한 연구인력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1991년 9월에는 그 대상을 인문사회계 연구기관 및 대학부설연구소로 확대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기업부설연구소가 설립되기 시작한 1979년에는 연말까지 46개 기업부설연구소가 설립되었고, 1981년 53개, 1985년 183개, 1988년에 500개를 넘었으며, 1991년 4월에 1,000개를 돌파하였고, 1995년 9월에 2,000개를 돌파하였다. 이와 같이 기업부설연구소가 가파르게 증가한 것은 기술개발의 필요성에 대한 기업의 인식이 전 산업에 걸쳐 널리 확산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기업부설연구소는 1990년대 말 벤처 붐에 따라 설립이 더욱 급증하였다. 이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기술혁신만이 기업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널리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2000년에 5,000개, 2004년에 10,000개, 2014년에 30,000개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고, 2018년 3월에 기업부설연구소가 40,000개를 돌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중소기업 부설연구소는 매년 큰 폭의 증가세를 유지하여 2018년 9월 현재 전체 기업부설연구소의 96%를 차지하고 있다.


  5. 창의적 고급 과학기술인력의 양성


1980년대부터는 과학기술 인재를 조기에 발굴하여 양성하기 위한 과학영재 육성사업이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과학고등학교의 설립이 추진되었고, 1983년 문을 연 경기과학고등학교가 그 최초이다. 이후 1984년에는 대전, 광주, 경남 등 주요 시·도별로 과학고등학교 설립 붐이 일어났으며, 1993년까지 전국에서 13개 과학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와 같은 과학영재의 조기교육을 통해 정부는 20대 초반에 이공계 박사학위 취득이 가능한 창의 인재 육성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에 더하여 2000년대에는 상위 1%에 해당하는 과학영재에 대한 수월성 교육을 목표로 하는 과학영재고등학교들이 설립되었다. 2001년 부산과학고가 첫 번째 한국과학영재학교로 선정되어 2003년부터 제1기 과학영재 입학생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과학영재고등학교의 설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서울과학고, 경기과학고, 대구과학고가 과학영재학교로 추가 지정되어 모두 4개로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2017년 현재 20개 과학고등학교와 8개 과학(예술) 영재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한편, 대학의 연구조직이 본격적으로 육성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로서 대학원 정원의 확대, 우수연구센터 육성사업, 대학원 중심대학과 연구중심대학 육성 등이 주요 시책으로 시행되었다. 이 가운데, 1990년에 시작된 우수연구센터 육성사업은 특정 분야별로 세계 수준의 선도 과학자를 육성하기 위하여 9년간 집중 지원하는 사업으로서, 대학의 기초연구 역량 제고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사업은 과학연구센터(SRC)와 공학연구센터(ERC)로 구분하여 추진하였는바, 2006년까지 총 113개 센터를 지원하였다.

또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 동안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대학 연구역량의 질적 개선이 더욱 필요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대학 연구역량의 질적 향상을 위해 교육부는 “두뇌한국 21사업(BK21)”을 1999년부터 실시하였다. 이 사업은 세계 수준의 대학원 육성 및 우수한 연구인력을 양성하기 위하여 석ㆍ박사 과정 및 신진 연구 인력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고등교육 인력양성 사업이다. 1단계 BK21 사업은 1999년에 시작하여 2005년까지 7년간 총 1조 3,421억원을 투입하였고, 2단계 BK21사업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7년간 총 2조 300억원을 투입하여 과학기술, 인문사회 등에서 전국 74개 대학 총 244개 사업단 및 325개 사업팀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현재 3단계 BK21 사업인 BK21플러스(Plus)이 추진되고 있으며, 2013년부터 2020년까지 7년간 총 1조 7,500억원을 투입하여 글로벌 수준의 석박사급 창의 인재를 양성함을 목표로 하고 있다.


  6. 지역의 기술혁신 역량의 강화


1994년부터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지역의 과학기술 잠재력을 개발하고 지역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지방 과학기술의 진흥시책들이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1990년대 이후 추진된 주요 지역연구개발 사업에는 산학연공동기술개발 사업, 지역협력연구센터 사업(RRC), 지역기술혁신센터 사업(TIC), 테크노파크 사업(TP)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지역협력연구센터 사업은 지역의 비교우위 산업과 지방대학의 우수한 연구개발 자원을 연계시켜 각 지방의 특성에 맞는 산업의 육성과 지방대학의 연구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과학기술처가 지원한 사업으로서 총 59개(1995년-2004년) 센터를 지원하였다.

산업자원부가 지원한 지역기술혁신센터 사업은 고급 연구인력을 보유한 우수 지방대학에 고가의 실험·측정 장비를 구축·운영하는 사업으로서, 대학과 중소기업이 이들을 공동 활용하여 기업의 기술개발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산업자원부는 각 센터별로 연간 국비 5억-10억원씩 5년간 지원하였으며, 1995년 2개 센터를 시작으로 2004년까지 총 44개의 지역기술혁신센터를 지원하였다. 한편, 2004년 과학기술행정체제 개편에 따라 지역혁신사업을 산업자원부로 일원화하면서, 기존의 과학기술부 지역협력연구센터 사업과 산업자원부 지역기술혁신센터 사업을 통합하여 2006년 지역혁신센터 사업(RIC)으로 일원화하였다. 그리고 이 사업을 통해 2009년까지 총 127개 센터를 지원하였다. 다른 한편, 지방 대학의 혁신역량을 강화하여 지역의 혁신을 도모하기 위한 누리 사업(NURI)에 2004년 부터 2008년까지 총 1조 2천억원을 투입하였다.

또, 1995년부터는 지역기술혁신의 구심체로서 테크노파크 조성사업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1997년 송도, 경기, 대구, 경북, 충남, 광주/전남 등 6개의 테크노파크 시범조성 사업에 착수하였으며, 2007년까지 1단계 조성사업이 완료되었다. 또 2008년부터는 2단계 조성사업을 추진하여 부산, 포항, 충북, 전북, 전남, 강원, 경남, 울산, 경기 대진, 서울, 대전, 제주 등 전국적으로 12개의 테크노파크를 추가로 설립하였다. 최종적으로 현재 세종특별자치시를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에서 18개 테크노파크가 운영되고 있다. 다른 한편, 대덕연구개발특구의 경험을 전국적으로 확산하려는 노력들이 시행되었다. 즉 기존의 대덕연구개발특구는 국가혁신체제로서의 위상을 지닌 첨단융합산업의 허브로서 육성하고, 2011년에 추가로 지정된 대구연구개발특구와 광주연구개발특구는 지역혁신체제(RIS)의 위상을 갖는 광기반 융복합산업의 거점 및 IT기반 융복합산업의 거점으로 각각 육성하는 방안이 추진되었다. 이후 2012년에는 부산연구개발특구, 그리고 2015년에는 전북연구개발특구가 추가로 지정되었다.


  7. 중소·벤처기업의 기술혁신 역량 강화


1980년대 중반까지도 중소기업을 노동집약 상태에서 기술집약화 및 생산성 향상으로 전환시키는 과제는 여전히 당면한 현안으로 남아있었다. 이에 정부는 1986년 “중소기업 창업지원법”을 제정하여 중소기업 기술창업자에게 자금지원 및 조세감면을 실시하는 한편, 창업투자회사의 설립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또 1990년에는 중소기업 구조 조정 조달기금을 설치하여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및 생산성 향상을 지원하고자 하였다. 이어서 1991년에는 창업보육사업을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이 사업은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창업 및 사업화에 소요되는 자금 및 신용을 갖추지 못한 유망 벤처기업에 대해서 별도의 담보 요구 없이 기술의 독창성과 기술경쟁력만을 평가하여 사업화 자금과 창업 공간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한편, 1996년 중소기업청이 출범하면서, 중소·벤처기업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에 대하여 개발기간 1년 이내에서 기업당 6천만원의 기술개발 자금을 정부가 출연금으로 지원해주고, 성과가 발생하면 지원금의 50% 내외를 5년간 상환하도록 하는 시책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기술개발 지원은 1997년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발효되면서 시작되었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보호와 육성의 대상으로 간주하여 저금리 정책과 경쟁제한 제도 위주의 시책을 추진해서는, 중소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와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기술력과 혁신성을 갖춘 중소·벤처기업의 육성에 중점을 두는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또 정부는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2001년 “중소기업 기술혁신 촉진법”을 제정하여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의 발굴 및 육성을 시행하였다. 이를 통해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이 중소기업청의 각종 기술지원 사업에 참여할 경우 우선적으로 지원 하도록 하였으며, 또 자금, 판로, 인력, 정보 등 다양한 지원사업들과 연계하도록 하였다. 한편, 정부는 2003년 제1차 중소기업 기술혁신 5개년계획(2004년-2008년)을 수립하여 다각적으로 지원 방안을 수리하였으며, 2009년에 제2차 중소기업 기술혁신 5개년계획(2009년-2013년)을 수립하였고, 2014년에 제3차 중소기업 기술혁신 5개년계획(2014년-2018년)을 수립하는 등 기술혁신형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였다.

이러한 지원정책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2000년대 중반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협력과 동반성장이 주요 이슈로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2005년 제1차 상생협력회의가 개최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사업영역의 보호와 공정거래 관행의 정착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정부는 2005년에 보다 진일보한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전략을 수립하여, 혁신형 중소기업의 초창기 과제발굴 단계에서는 타당성 평가를 지원하고, 기술개발 단계에서는 평가를 생략하면서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사후관리 단계에서는 사업화 자금을 지원하고, 최종적인 판매 단계에서는 구매조건부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등 일괄지원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또, 2000년대 중반 이후 조립·장치 부문에서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고부가가치의 부품·장비·소재를 공급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중견기업의 육성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2010년에는 세계적인 전문 중견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중간규모 기업군을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육성하고,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나아가 대기업으로 성장하도록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시책을 수립하였다. 이에 더하여 글로벌 전문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연구개발 전략을 수립하였는바, 정부 연구개발예산 중에서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지원 비중을 더욱 확대하는 한편,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중소·벤처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을 적극 지원하도록 하였다. 여기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비의 5-15%를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기술, 인력, 장비 지원에 의무적으로 배정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인력을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되었다.


이와 같이 중소·벤처기업의 기술혁신 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시책들을 기반으로 하여 중소·벤처기업의 수가 대폭 증가해왔다. 한국의 벤처기업 수는 1998년 2,042개에서 시작하여 2001년 말에는 11,392개까지 증가하다가, 정부의 내실 있는 벤처기업 육성시책에 따라 다소 줄어들어 2003년에는 7,702개에 이르렀다. 하지만 벤처기업 수는 2005년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6년에는 12,218개로 증가하였고, 2010년에 2만개를 돌파하였으며, 2015년에 3만개를 넘어섰다. 그리고 2016년 12월말 현재 벤처기업 수가 총 33,360개로 증가하여 벤처 인증제도를 도입한 1998년 이래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와 같이 기술집약형 중소·벤처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를 밝게 비추는 것으로서, 향후 이들이 한국에서 기술혁신형 기업의 중추세력으로 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