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 기술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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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작년 6월, 수림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신 후 약 9개월이 지났습니다. 수림문화재단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앞으로 역점을 두고 추진하실 점이 궁금합니다.



수림문화재단은 전 중앙대 이사장이셨던 재일동포 고(故) 김희수 선생이 중앙대학 경영권을 두산그룹에 양도하면서 조성한 천억 원을 바탕으로 설립된 곳입니다. 자손들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지 않으시고 모든 재산을 조국에 선물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그리고 김희수 선생은 항상 사람을 강조하셨습니다.


“다음 세대에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인생의 하(下)이며, 사업을 물려주는 것은 중(中), 사람을 남기는 것이야 말로 상(上)으로 최고의 인생이다.”(김희수 선생 평전 ‘배워야 산다’中)


그 말씀처럼 사람을 세우는데 평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남긴 이의 뜻처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림문화재단을 통해 혜택을 받았으면 합니다. 저의 역할은 그저 이곳을 공정하고 깨끗하게 운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이 이뤄지고 있나요?


열정과 창의력은 있지만 수월성을 기준으로 평가를 하다보니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젊은 문화예술인들에게 특히 많은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는 주로 그동안 얼마나 우수한 성과를 내었는지를 기준으로 지원할 대상을 선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반면 수림문화재단은 참신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젊은 예술인재들을 중심으로 재원과 공간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국내에는 국악과 양악, 국악과 미술 등 장르 융합적인 분야를 지원하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걸 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소액, 다건 방식 보다는 장래성이 있는 인재들을 선정해 파격적이고 중점적 지원을 해 주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좋은 작품에 대해선 우리가 공연장, 연습장, 전시장 같은 공간과 재원을 지원해 주기로 하고 공모전을 했더니 약 300팀(개인포함)이나 지원했습니다. 기존의 잣대로는 빛을 보지 못할 좋은 생각, 좋은 사람을 키워나가는 것이 재단 설립자인 김희수 선생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이사장님은 제22회 행정고시 합격 후 제 7대 문화관광부 차관, 한국여가문화학회 회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십니다.


  그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요?


말씀하신 대로 워낙 다양한 일을 해오다 보니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글세요(웃음). 대신 특별히 가지게 된 생각이 있습니다. ‘정부가 모든 일을 할 수 없다’라는 것이죠. 과거 부처에 있을 땐 제가 나서서 무엇이든 바꿔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깨달은 것은 정부가 모든 것을 할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영역에 개입하거나, 또는 그 외의 부분에서 감시자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 민간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부 역할의 본질이죠. 정부가 모든 걸 나서서 하려고 한다면 국민들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


우리사회에 신뢰가 없으면 혁신도 불가능합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문화콘텐츠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전환되던 2천년대 초, 문화부 문화산업국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국민들의 기대와 예산은 커졌는데 바뀐 환경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사실 참 막막했습니다. 그 때 든 생각이 정부가 무엇을 나서서 만들기 보단 ‘정부 정책을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주력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그런 여건이 잘 만들어졌고, 덕분에 한류를 중심으로 디지털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특히 문화부 장관으로 취임하시며 ‘국민이 잘 놀 수 있는 사회, 경쟁에서 자유로워지는 사회, 창의성을 발현할 기회를 주는 사회’를 강조하시고, 취임 후 가장 먼저 대체휴일제 도입에도 앞장서신 바 있으십니다.


  이사장님은 유독 ‘행복’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젠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좋아지는 세상은 지났습니다. 열심히, 오래 일하고, 돈도 많이 투입하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인식은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사회 지도층이 말입니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이런 생각이 실제 행동과 제도로는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만해도 과거 공직시절을 돌이켜보면 부끄럽지만 반성할 점이 많죠. 교육제도만 해도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몇 년 전 사회를 뒤흔든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도 마찬가지 입니다. 비단 문화예술계의 문제만도 아닌 것이죠. 이런 상태로는 사회가 결코 나아질 수 없습니다. 사회 지도층부터 세상의 변화를 인정하고, 사회가 변화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모두가 행복한 길이 아닐까 합니다.


이사장직에 무급으로 임하시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사장직 단임제를 위해 정관까지 변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수림문화재단은 대한민국의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김희수 선생이 모든 재산을 털어 이곳을 세우셨는데, 제가 여기서 주인처럼 오래 있는 것도 도리가 아니죠. 누군가 이사장으로 오래 있으면 결국 그 사람 개인 소유가 되어 재단이 사유화되기 쉽습니다. 저와는 또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 주길 바랄 뿐입니다.


  얼마 전 KIST와 수림문화재단은 KIST의 연구성과를 예술가의 시선으로 표현하기 위한 융합 프로그램 ‘Artist’s view of science (AVS)’를 착수하였고 KIST 연구자들의 호응도 매우 큽니다.


KIST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그들의 생각과 지식을 내어 놓고,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자는 제안이 매우 고무적입니다. 엑스레이 아트 등 이미 어느 정도 만들어진 과학적 성과를 예술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시도는 이뤄지고 있지만, AVS 프로그램처럼 두 분야의 사람들이 첫 단계부터 함께 기획하고 만들어 가는 방식은 정말 드문 경우인 것 같습니다.


이사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과학기술과 문화예술계간 협력의 필요성, 그리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과학과 예술은 모두 소통과 교류를 통해 영감과 통찰력을 얻는 분야입니다. 두 분야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고, 또 어떻게 서로 지적인 자극을 받느냐에 따라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결과물들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주 실용적인 것에서부터, 또 한편으로는 과학은 무엇인가,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은 보다 근원적 차원의 고민과 생각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결국 그 결과물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 프로젝트가 단순히 예술을 위한 예술, 과학을 위한 과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내놓은 결과물들이 국민들에게 지적인 자극을 주고, 더 나아가 삶을 바꿀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 과정에서 과학과 예술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 그리고 과학자와 예술가로서 우리 사회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양심적이고 진지한 성찰들도 함께 이뤄졌음 하는 바람입니다.


  문화예술계의 리더로서, 또는 일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과학기술계에 바라는 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히 제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웃음). 다만 과학기술인들이 행복이라는 가치를 더 우선순위에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우리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를 늘 생각하자고 강조해왔습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모든 일은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게 나의 행복일 수도 있고, 우리 사회의 행복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분리된 것은 아닙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 보다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어떻게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할 때, 연구자들도 더 의미 있는 발견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기술계에 더 큰 성과를 요구하는 외부 시선의 부담도 큽니다…


과학기술인들이, KIST 연구자들이 좀 더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었다면 현존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이미 답을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당장 올해 몇 개의 실적을 냈냐 개수만 세어서 평가하는데 그들이 무언가 창의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있을까요? 생각의 틀을 자꾸 정책적 틀로 제한해서는 의미있는 것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으신 목표나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제 나이가…무엇이 되겠다라는 꿈을 갖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같죠?(웃음). 앞으로는 제 다음 세대의 세상이지, 우리세대의 세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것, 도전적 시도에 안도감을 주는 환경 만들어야”


다만 그동안 살면서 제가 갖게 된 경험과 지식, 인적 네트워크 등이 다음세대를 위해 의미 있게 쓰이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일례로 ‘이렇게 살아도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구나…’라는 본보기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사회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다양한 해답을 함께 찾아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데 많은 이들이 안도감, 행복감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저와 같은 사람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감명 깊게 읽으신 책이나 인생 좌우명이 궁금합니다.


10년 전 쯤 일본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으로부터 보름 동안 일본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해 준다는 제안이 왔습니다. 훗카이도부터 나가사키까지 소위 ‘망한’ 곳만 찾아다녔습니다. 2007년 파산한 훗카이도 유바리, 일본 버블경제 최정점에서 기획된 테마파크가 있는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 등 말이죠. 그들에게 왜 사업이 실패했는지 질문하면 서로 머쓱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그들은 자신들의 실패 이유를 아주 거침없이 이야기 해 주더군요. 결국 대부분의 공통점은 관료와 정치계가 결탁한 토목사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제 생각과 비슷한 ‘수축사회’란 책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제 사회가 팽창해서 파이를 나눠먹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미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고, 곧 마이너스섬 게임에 진입할 것이라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끝없이 성장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하에 토목, 인프라 등에 막대한 예산을 쓰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도 부가가치를 가져올 순 있지만 그 기술들이 잘 성숙, 정착되기 전까지는 결국 일자리 감소를 피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인구도 급격히 감소하는 중입니다. 학자 유발 하라리도 최근 그의 여러 책들에서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하죠.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사례와 함께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우리 사회도 이러한 미래 사회의 충격에 연착륙, 최소 경착륙이라도 하기 위한 준비가 시급함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습니다.